“5년 차 신인” 이런 게 임희정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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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차 신인” 이런 게 임희정 [인터뷰]
  • 한이정 기자
  • 승인 2023.03.13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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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계속 하면 정말 꿈과 목표가 사라질까. 적어도 임희정은 그렇지 않다. 점점 꿈이 또렷해지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투어 5년 차인 임희정은 올해도 초심으로 돌아간다.

3년 전 가을 어느 날, 대회장에서 일을 마치고 나오니 누가 홀로 그린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날은 어둑해지고 시간은 오후 6시를 향해 달리고 있었으니, 그 선수는 마지막 조였다 하더라도 족히 1시간 넘게 연습하고 있던 셈이다. “와, 아직도 연습하냐.”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선배가 “자주 저래” 하며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 선수가 바로 임희정이다. 그때 이후 임희정 하면 예쁜 사막여우보다 지독한 연습벌레가 떠오른다. 임희정에게 이때 얘기를 꺼냈다.

임희정은 “안 되면 될 때까지 하자고 생각하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컨디션 조절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지금은 연습량이 줄긴 했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에도 연습 그린에서 자주 봤다고 하자, 씩 웃더니 “최대한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다음 결과를 기다리자는 마음이다”고 대답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통산 5승을 거두며 한국 여자 골프를 대표하는 선수가 된 임희정은 선수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스윙을 가졌다고 하지만 그만큼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다.

아마추어 때 가장 많이 연습을 했다는 임희정은 “눈 떠서 연습장에 가면 저녁 먹기 전까지는 거기에만 있었다. 무조건 많이 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손이 떨릴 때까지 했다. 근육통이 와야 ‘아, 오늘 운동 좀 했구나’ 싶었다”고 회상했다. KLPGA투어에 처음 나서서 3승을 거둔 2019년에도 엄청난 연습량을 소화했다. 임희정은 “그때도 정말, 제일, 오래 연습했다”고 웃으며 말하더니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런 부분이 쌓이고 쌓여서 결과로 나타난 거라 생각한다. 지금도 순간순간은 힘들지만 잘 버텨내려고 한다”고 답했다.

무작정 연습만 했던 임희정도 연차가 쌓이면서 ‘연습 잘하는 요령’이 생겼다. 더 효율적으로 골프를 하기 위해서다. 그는 “해를 거듭할수록 거리를 늘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려면 운동이 필수더라. 그래서 운동에도 신경 쓰기 시작했다”면서 “아직도 시간 분배하는 게 가장 어렵다. 예전에는 연습만 많이 하면 끝이었는데 지금은 운동도, 연습도 적절히 섞으면서 해야 하니까 내게 맞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찾아가는 중이다”고 전했다.

“5년 차 신인.” 임희정이 인터뷰 때 농담처럼 툭 던진 말이다. 불과 4년 전만해도 정규투어에서 어리고 당돌한 선수였던 그는 이제 5년 차 선배가 됐다. 그래도 ‘초심’이란 마음 하나는 변하지 않았다. “신인 때는 뭣도 모르고 덤빈다고 그러잖나.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알면 알수록 생각할 것도 많아지고 내가 선택해야 하는 것도 많으니까 그걸 잘 조절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래도 경험이 쌓이니 지루하지 않다. 더 높은 곳으로 가려고 하니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특히 임희정이 자신을 더 채찍질하게 된 시기가 바로 지난해, 2022년이었다. 차근차근, 치열하게 시즌 준비를 마쳤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교통사고를 당하며 계획이 꼬였다. 겨우 투어에 복귀하긴 했으나 몸 상태가 좋을 리 없었고, 대회가 끝나면 휴식보다 정형외과, 한의원을 전전하며 병원 투어를 해야 했다. 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직업이 운동선수인데 운동을 제대로 못 한다는 것만큼 답답한 게 없었다. 임희정은 “힘들었다”는 말을 연거푸 내뱉었다. “티 나지 않게 혼자서 많이 힘들었다. 투어 생활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다. 이전에는 성적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았는데 작년에는 골프 외적으로 스트레스가 컸다. 내가 연습하거나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 정말 힘들었다.”

몸도 아픈데 ‘나는 지금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마음을 자주 가라앉혀야 했다. 내가 생각하는 성적이나 퍼포먼스가 있는데 몸이 잘 따라주지 않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을 땐 그걸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더라. 처음에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나만 손해였다. 그래서 마인드 컨트롤을 잘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치료 때문에 유독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았다. 임희정은 그 시간도 유용하게 쓰려고 했다. “명상하거나 최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혹은 다른 선배들이나 동기부여 영상을 보며 배운 좋은 말을 되뇌며 많이 이겨냈다.” 그렇게 임희정답게 이겨냈다.

임희정이 힘을 얻었던 것은 타이거 우즈의 인터뷰 영상이었다. 우즈도 2021년 교통사고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임희정도 그런 부분에서 동질감을 느꼈을 터다. 또 시즌 막바지에 ‘레전드’ 신지애를 우연히 만난 게 큰 도움이 됐다. “신지애 선배가 저보다 힘든 시기를 많이 겪으셨으니 조언을 구했는데, 선배가 ‘어차피 지나간다. 그걸 버티느냐 못 버티느냐는 큰 선수가 되냐 아니냐의 차이’라고 하시더라. ‘버티면 지나간다. 나도 버텨서 지금 이 자리에 있으니까 너도 잘 이겨낼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게 큰 힘이 됐다.”

결국 힘든 시기를 버텨 내셔널 타이틀 DB그룹 제36회 한국여자오픈골프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그것도 54홀 최저타, 72홀 최저타 기록을 갈아 치우며 한국 여자 골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에서 정상에 섰다.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앞으로 골프 인생뿐 아니라 살아가는 데도 많은 교훈을 얻은 것 같다. 일상의 감사함을 많이 느꼈다. 4년 동안 투어 생활을 하면서 당연하게 여겨왔던 게 당연한 게 아니고 감사해야 하는 것이었다는 걸 많이 느꼈다.”

임희정은 “초심을 되찾았다”고 웃었다. 대회장에 갤러리가 다시 들어오면서부터다. 그리곤 이를 악물었다. “갤러리 입장이 허용되면서 루키 때 느꼈던 기분을 다시 느끼게 됐다. 갤러리가 지켜보고 있으니 더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고, 그런 마음이 동기부여가 됐다. 사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 때문에 재미없었다. 팬이 없으니 해이해진 부분도 있는데 이제 다시 시작해보겠다는 마음이다.”

힘든 시즌을 끝내고 새 시즌을 맞이하는 만큼 올해는 골프에 미쳐서 제대로 일을 내겠다는 각오다. “진짜 골프만 생각해보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봤을 때 어느 정도 성적을 낼 수 있을까 시험해보고 싶다.” “작년에 해외 투어에도 나가보려 했는데 계획이 틀어졌으니 올해 한 번 더 도전해보려고 한다.”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을 줄줄이 늘어놓는 그는 마치 정규투어 데뷔를 앞두고 꿈에 부푼 신인 선수 같았다.

해외 진출도 당연히 꿈꾼다. 임희정은 “아직 KLPGA투어에서 타이틀을 딴 게 없다. 2년 연속 인기상 외에 상금왕이나 대상 같은 성적으로 주어지는 개인 타이틀이 없다. 타이틀을 획득하고 내게 확신이 생긴다면 주저하지 않고 도전할 것이다”고 다짐했다. 국내·외를 오가며 부지런히 커리어를 쌓아 임희정이 지금까지 보고자랐던 선망의 대상 박세리, 신지애 같은 레전드가 되고 싶은 꿈을 꾼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커리어를 쌓고 지금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자 한다. 자칭 ‘5년 차 신인’은 자신있게 외쳤다.

“우선 골프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독하다는 이미지가 선수로서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경기할 때도 경쟁자가 압박을 느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골프장에서는 독하지만 편한 자리에서 봤을 때는 좋은 사람이길 바란다.”

은퇴 후에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소중한 사람들과 협업하며 사는 삶을 꿈꾸고 있다. “골프를 매개로 다양한 분야와 컬래버레이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 후배들도 돕고, 박세리 선배처럼 나 자체를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 


임희정 : 나이 만 23세 / 투어 데뷔 2019년 / 성적 KLPGA투어 5승(메이저 2승)

사진_김시형(49비주얼스튜디오) / 스타일리스트_정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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