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된 모래언덕, 미국 듄스 코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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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된 모래언덕, 미국 듄스 코스들
  • 인혜정 기자
  • 승인 2023.03.2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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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피터힐스클럽

영국 작가인 버나드 다윈(Bernard Darwin)은 ‘완벽한 골프의 땅’을 “왼쪽으로는 모래언덕들이 끊어질 듯 이어지며 물결치고 오른쪽으로는 광활한 덤불이 펼쳐진 곳”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다윈이 언급한 곳은 넓은 의미의 링크스, 고랑이 패었는가 하면 모래언덕이 솟구치고, 히스(황야에 있는 야생화)와 페스큐, 가시금작화가 어우러진 다소 황량한 풍경, 바다가 골프를 하라며 내준 해안의 길쭉한 터전이다. 

수백 년 동안 골프는 오로지 이런 곳에서만 하는 줄 알았다. 가뜩이나 울퉁불퉁한 땅 위로 바람이 지나며 모래언덕을 뒤덮은 풀들을 흔들어대는 상황에서만 플레이를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사람들이 해변 링크스를 벗어나 처음으로 코스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그 작고 하얀 볼을 쫓아다니는 걸 의미 있게 만들어준 것이 한없이 다양하고 종잡을 수 없는 모래언덕들이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듯 보였다. 

형식의 틀을 벗어난 자연주의적 정원이라는 개념을 전파했던 18세기 영국의 조경 디자이너 윌리엄 켄트(William Kent)는 “자연은 직선을 혐오한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150년이 지났을 때 같은 영국의 설계가들은 직선과 직각으로 해저드를 만들어 넣은 대칭의 홀들로 정형화된 코스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골프는 모래와 언덕이 발휘하는 임의적인 영향력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또는 완전히 벗어나 있지 못했다. 우리가 그들의 역할과 형태를 빚어내는(풀과 나무를 무성하게 키워내는 비옥한 토양, 언덕의 비탈, 갈대가 우거진 습지, 또는 뜨거운 사막의 단단한 바위) 능력에 감탄하는 건, 골프는 원래의 자연이라는 모국어로 말할 때 가장 시적이며 깊은 감동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태어난 장소로 돌아가려는 계통발생적 본능처럼 골프도 태고의 고향으로, 정신적으로나마 돌아가길 갈망한다. 미국에서도 1세대와 2세대 골프 코스들은 영국과 아일랜드의 전통에 따라 해안에 터를 잡았다. 사이프러스포인트, 메이드스톤, 뉴포트, 이스트워드호! 시아일랜드와 세미놀 등이 그런 경우다. 

하지만 아무래도 미국에서는 오리지널 링크스의 기후나 토양을 찾을 수 없었다. 이후 60년 동안 골프 설계가들은 링크스의 특징을 재현하려고 노력하면서 심지어 인공적인 모래언덕을 조성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아주 그럴듯한 실력을 갖추게 됐다. 그러다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곳에 아주 훌륭한 천연의 모래언덕이 존재하며, 그게 꼭 바닷가 인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모래언덕을 끊임없이 추구해온 결과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 코스가 생겨났다. 

자연이 만들었건 의도적으로 조성했건, 모래가 굽이치는 흥미진진한 환경은 다윈의 말처럼 여전히 골퍼들의 마음에 기쁨을 안겨주며, 이제 능력에 대한 의구심 대신 그곳에서 플레이를 하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엎치락뒤치락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처럼 골프도 모래언덕들 사이를 들고 나지만, 결국에는 다시 돌아오게 된다.

▲ 주피터힐스클럽, 플로리다주 테케스타
언론을 통해 접하는 이미지와는 달리 플로리다는 평지가 아니다. 바다 밑에 잠겨 있던 모래의 능선이 내륙 지역에 해저 주름을 만들어놓았고, 광활한 해안선에는 수풀이 자라난 모래언덕이 곳곳에 모여 있다. 

그중에는 놀랄 만큼 큰 것도 있으며, 팜비치 북쪽으로 대서양을 끼고 있는 주피터힐스에도 직선 높이가 21m에 달하는 모래언덕이 있다. 프로 선수로도 활동했던 조지 파지오(George Fazio)가 1969년에 설계한 이곳은 홀들이 능선을 오르내리며 고도 차이를 절묘하게 활용했다. 

파지오는 그 후로도 계속해서 디자인을 조금씩 손봤지만(그리고 그의 파트너이자 조카인 톰 파지오도 여러 차례 리모델링 작업을 했다) 근본적이고 경이로운 경사진 모래 지형의 특징은 변하지 않았다. 

와일드듄스 리조트

▲ 와일드듄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아일오브팜스
미국 남동부의 평행사도(모래와 자갈이 퇴적해 만들어진 섬)는 육지를 보호하는 방파제 역할을 하지만 골프에 자리를 내주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와일드듄스의 링크스 코스처럼 그곳에 코스를 조성하면 골퍼들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대서양의 파도가 달려와 부서지는 모래언덕에서 플레이하는 경험은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톰 파지오가 1980년에 설계한 와일드듄스는 한때 골프다이제스트가 선정한 미국 100대 코스 리스트에서 50위권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허리케인이 몇 차례나 코스를 휩쓸고 지나는 바람에 웅장했던 18번홀이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코스의 마지막 홀들은 간혹 야성적인 면모가 지나치다는 평가를 받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독특한 매력을 과시한다.  

아메리칸듄스골프클럽

아메리칸듄스골프클럽, 미시간주 그랜드헤이븐
아메리칸듄스는 댄 루니(Dan Rooney) 중령이 작전 중에 부상 및 장애, 또는 사망한 군인들의 유가족을 돕고 장학금을 제공할 목적으로 설립한 비영리 기구인 ‘폴즈 오브 아너(Folds of Honor)’가 탄생한 곳이다. 

기금 마련을 통해 일정 부분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사회적인 의무를 다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지만, 이곳이 골퍼들에게 플레이의 열망을 안겨주지 못했다면 그만큼의 영향력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코스를 잭 니클라우스와 그의 디자인 팀이 2020년에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했다. 흙을 파내고 나무를 제거해서 페어웨이의 옆구리를 파고드는 동굴 같은 모래 벙커들이 드러났다. 이런 유형의 모래 토양과 사구 지형은 미시간 호수와 함께 주의 서쪽 가장자리를 따라 길게 이어진다.

베이사이드골프클럽

▲ 베이사이드골프클럽, 네바다주 브룰
모래언덕이라고 해서 전부 거대하거나 풀이 수북해야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건 아니다. 코스에서는 홀이 그걸 얼마나 창의적인 방식으로 활용하는지가 중요하다. 

골프계에서 가장 유명한 세미놀과 프레리듄스의 모래언덕들은 주로 높이를 확보하는 용도로 사용됐고, 티와 그린의 출발점과 도착점 역할을 한다. 

데이브 액슬랜드(Dave Axland)와 댄 프록터(Dan Proctor)가 네브래스카 서부의 매코너히 호숫가에 설계한 베이사이드의 모래언덕들은 낮고 길쭉하며, 대초원의 풀로 덮여 있다. 페어웨이를 부분적으로 완만하게 밀어 올려 구릉진 형태를 만들어내며 퍼팅면에 벤치처럼 솟아오른 부분을 조성하기도 한다.

▲ 체임버스베이, 워싱턴주 유니버시티플레이스
체임버스베이는 유서 깊은 스코틀랜드의 링크스가 아닌 아일랜드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했다. 이곳의 모래언덕은 갑작스럽고 가파르며, 아일랜드의 케리나 클레어 지방에서 공수해왔다고 해도 믿을 만큼 무성한 풀로 덮여 있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밸리버니언의 유쾌한 장난기와 아일랜드 남서부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있는 워터빌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한때는 퓨젓사운드 위로 돌출한 형태였지만, 모래와 자갈을 채굴하면서 부지가 차츰 낮아진 탓에 지금은 바다와 거의 맞닿아 있다. 

로버트 트렌트 존스 2세와 그의 팀은 부지에 남아 있는 것들로 코스를 꾸몄으며, 사람의 손으로 완성된 것도 시간과 바람, 기후가 만들어낸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

▲ 밸리닐골프&헌트클럽, 콜로라도주 홀리요크
이름처럼 모래언덕이 많은 네브래스카주의 중심부에서 1995년에 문을 연 샌드힐스골프클럽은 골퍼들이 그 전까지 링크스 코스에 대해 지니고 있던 고정관념을 바꿔놓았다. 모래와 단단한 잔디, 그리고 물결치듯 기복이 심한 땅만 있다면 바다에서 몇백 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아도 얼마든지 링크스 코스로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톰 도크가 설계한 밸리닐이 바로 그런 곳이다. 홀들이 콜로라도 북동쪽의 건조한 모래 지형을 구르듯이 흘러가는 밸리닐은 골프계 최고의 자연적인 코스로 손꼽힌다. 그린은 미국에서 가장 야성적인 매력을 자랑하지만(거품이 이는 듯한 8번과 12번홀의 그린 표면이 대표적이다) 원래의 지면을 그대로 반영했을 뿐이다.

▲ 퍼시픽그로브골프링크스, 캘리포니아주 퍼시픽그로브
미국 골퍼들이 모래언덕에서 플레이하는 경험을 누리려면 일반적으로 여행을 가서 비싼 리조트 비용을 지불하거나 회원에 가입해야 한다. 하지만 시에서 운영하는 퍼시픽그로브라면 그럴 필요가 없다. 

몬터레이반도 북단에 위치한 이 퍼블릭 코스에서는 75달러도 안 되는 가격에 모래와 바람, 그리고 풍경의 정취를 모두 누릴 수 있다. 페블비치를 만든 설계가인 챈들러 이건과 잭 네빌이 완성한 퍼시픽그로브의 세컨드 나인은 나지막한 모래 구릉, 바닷가의 식물들과 풀이 어우러진 가운데 대양을 굽어보며 플레이하려는 골퍼들의 낙원이다. 

평범한 수준의 골프 홀이라도 모래와 모래언덕이 곁들여지면 얼마나 탁월해 보일 수 있는지 말해주는 사례다.

▲ 메이드스톤클럽, 뉴욕주 이스트햄프턴
미국에서 롱아일랜드 동쪽 끝에 위치한 메이드스톤의 중간 부분을 이루는 홀들처럼 예전의 링크스 느낌을 완벽하게 안겨주는 곳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초반과 막판의 홀들은 벙커 배치는 영리해도 너무 순한 느낌이 있지만, 8번(파3)부터 15번홀(파5)까지 구간은 깎아 지르는 모래언덕과 다채로운 해초가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면서 골프의 본질을 그대로 전해준다. 

바람이 세차게 일어날 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코스들이 근처에 있지만, 그야말로 바다 위에 바로 펼쳐진 네 홀을 포함해서 이렇게 진귀한 홀들이 포진해 있는 메이드스톤은 골프의 근원으로 돌아간 듯한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글=데릭 덩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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