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나’는 루키, 황유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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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나’는 루키, 황유민 [인터뷰]
  • 한이정 기자
  • 승인 2023.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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앳되고 귀여운 얼굴에 숨겨진 승부 본능. 아마추어 때부터 언니들을 떨게 했던 과감한 플레이. 올해부터 정규투어에서 나설 슈퍼루키 황유민이 말했다. ‘겁나’ 잘할 거니까 기대하세요.

 

“고집도 세고 자기주장이 강해서 솔직히 부모 입장에선 키울 때 힘들었죠. 근데 내 딸이지만 유민이는 뭐라도 하겠다 싶었어요. 예전부터 하고자 하는 의지가 남다른 아이였으니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고 하던가. 황유민도 그렇다. 2020년 대한골프협회(KGA) 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더니 2021~22년에는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2021년 강민구배 한국여자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에서 대회 최저타를 경신하며 정상에 올랐다. 여자 골프 아마추어 세계 랭킹 3위, 아시아 1위….

이력을 줄줄이 나열하기도 벅찬 그는 지난해 5월 NH투자증권레이디스챔피언십에서 박민지와 우승을 두고 맞붙어 국내 팬에게 이름을 확실하게 알렸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최강자와 겨뤄도 떨지 않고 당당하게 제 플레이를 했던 황유민은 18번홀에서 세컨드 샷을 미스해 박민지에게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그는 경기 후 “아깝다, 아깝다. 진짜 아깝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멍때렸다’고 한다.

“18번홀 세컨드 샷이 디봇에 있긴 했는데 엄청 어려운 샷은 아니었어요. ‘콘택트’만 좀 신경 쓰면 됐어요. 근데 그게 그날 유일하게 확신 없이 들어간 샷이었어요. 확신 없이 했던 샷이 미스 샷으로 이어지니까 계속 자책했어요. 다신 그러지 말자고 다그쳤어요. 그리고 다음 날 다시 멘탈을 리셋하고 돌아왔어요. 한없이 꺼질 때도 있지만 금방 되돌아오거든요.”

이제 황유민은 프로로서 KLPGA 정규투어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다. 주목받는 슈퍼루키인 그는 정규투어가 떨릴 법도 하지만 당당하다. “설레요. 재밌을 것 같아요. 언니들과 우승 경쟁을 한다면요? 압박되는 순간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할 수 있어요.”
 

장타, 포기 못해!

황유민을 처음 보면 모두 의아해한다. ‘저 사람이 어쩜 그렇게 멀리 보내지?’ 키 163cm로 체구가 크지 않지만, 드라이버 비거리는 260야드를 훌쩍 넘긴다. 국가대표로 프로 대회에 출전했을 때 황유민의 티 샷을 본 사람들은 저마다 혀를 내둘렀다. 스스로도 장점을 비거리로 꼽을 정도다. 볼 스피드는 최고 150마일이 찍힌다. 체구가 작은 선수는 어떻게 장타자가 됐을까. 왜 장점으로 비거리를 택했을까.

“중학교 3학년 때 한 대회에 나갔는데 같이 한 언니들 비거리가 엄청난 거예요. 당시 코스가 엄청 길고 그린이 어려웠어요. 제가 5번 아이언을 잡고 친 공은 그린에서 굴러 나갔는데, 언니들은 피칭 웨지로 딱 그린에 공을 세우더라고요. 그게 제게는 큰 벽처럼 느껴졌어요. 그때는 비거리가 정말 안 나갔거든요. 이 상태로는 내가 최고가 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비거리를 늘이자고 결심했어요.”

신성고 1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비거리에 욕심을 냈다. “고1 때 20m 정도 확 늘었고, 매년 5m씩은 꾸준히 비거리가 좋아졌어요. 확실히 플레이하기 너무 편하더라고요. 유틸리티로 공략해야 했던 걸 7번 아이언으로 해도 되니까 비거리의 중요성을 다시 실감했죠. 또 멀리 보내면 기분 좋잖아요. 그래서 비거리는 포기 못하겠어요(웃음).”

가벼운 걸로 빠르게 빈 스윙을 했던 게 큰 도움이 됐다. 또 순발력 좋아지는 운동을 많이 했다. “비거리에 욕심을 내면서 방향성을 잃긴 했는데…”하며 멋쩍게 웃더니 “비거리를 많이 내는 제 스윙 비결은 빠른 전환 동작인 것 같아요. 힘을 싣는 몸 쓰임이 좋다고 할까. 순간적인 스피드가 빠른 것 같아요”라고 당당히 말했다.

 

아빠, 나 골프할래

초등학교 4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다. 아버지를 따라 실내 연습장에 간 게 계기가 됐다. “제가 할 게 없어 보여서 데리고 가셨대요. 어쩌다 배워서 5학년 2학기 때 처음으로 대회에 나갔어요. 평소 스코어는 90대 후반이었는데 무슨 일인지 86타를 적어냈어요. 지금 제가 다시 생각해도 그렇게 잘할 수가 없었어요. 너무 기뻤고 골프가 쉽게 느껴졌어요. 아빠한테 바로 전화했죠. ‘골프 선수가 되겠다’고.”

쉽게(?) 골프를 택했지만 운동선수의 삶은 녹록지 않다. 매일 몸을 단련하고 숨 막히는 압박을 견뎌내며 살아야 한다. 황유민도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한다. “더 잘하려면 똑같은 걸 계속해선 안 되잖아요. 더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잘될수록 새로운 걸 찾는 것 같아요. 작년에 스스로 변화를 주고 싶은 게 있었는데 그게 잘 안 됐어요. 샷 편차가 컸죠. 그래서 지난겨울 전지훈련 때 샷 메이킹 연습을 많이 했어요. 이제 자신 있게 플레이해도 될 것 같아요.”

정규투어에서 잘하기 위해 기술 연마도 빼놓지 않았다. 4월부터 빼곡한 대회 스케줄을 소화하려면 체력 관리도 해야 한다. “정규투어 코스를 공략하려면 다양한 구질을 소화할 줄 알아야겠더라고요. 제 주 구질은 드로인데 페이드 정확도도 높였고, 탄도 높은 샷도 연습했어요. 1년 내내 흐트러짐 없이 연습하려면 밥도 잘 먹고, 몸무게도 빠지면 안 될 것 같아요. 시즌에도 매일 운동하는 플랜을 짜면 괜찮지 않을까요?”

마인드 컨트롤도 다시 했다. 마음 편하게 먹고 나섰던 점프투어에서 쉽게 우승하지 못한 경험을 밑거름 삼았다. “저는 스스로 칭찬을 많이 해주는 편이에요. 하지만 경기할 때는 칭찬을 잘하지 않았어요. 실수하면 제게 화를 내기도 해요. 최대한 참으려고 하지만 표정에서 다 티가 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경기 중에도 제게 칭찬을 많이 해주려고요. 미스 샷이 나와도 ‘나는 골프 잘하니까 이런 건 아무것도 아냐’ 하고 생각하고 넘어가니 괜찮더라고요.”

골프가 좋은 스무 살

“유민이는 골프밖에 몰라요.” 업계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얘기했다. 그 흔한 사인도 없다. 사인을 해달라고 하자 이름 석 자를 정자로 써줬다고 한다. 요즘은 나름 멋있게 사인을 해주기 위해 성을 뺐다. 입단하며 사인 하나 만들지 않았을 정도로 머릿속은 골프로 가득 차 있다.

골프 때문에 성격도 바뀌었다. “저는 평소에 상상을 많이 해요. 그러다 보니 플레이할 때도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8번홀에 있으면서 15번홀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거죠. 그래서 의도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성격도 변하는 것 같아요. 성격유형지표(MBTI)도 원래 ENFP였는데 지금은 ESFP로 나와요.” (S는 감각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며 현재에 집중하고, N은 미래지향적으로 상상력이 뛰어나 추상적인 것을 좋아하는 유형으로 알려졌다.)

하루에 골프 생각은 얼마나 하냐고 묻자, 80% 이상이라고 답했다. “쉬는 시간 한두 시간 빼고는 골프 생각만 하는 것 같아요. 쉴 때 뭐 하냐고요? 유튜브로 좋아하는 선수 스윙 영상을 찾아봐요. PGA투어 하이라이트도 보고.”

좋아하는 선수는 잰더 쇼플리다. 쇼플리도 황유민처럼 PGA투어에서는 체구가 작은 편이지만 장타자에 속한다. “닮고 싶은 부분이 굉장히 많은 선수예요. 도쿄올림픽 때 금메달 따는 모습을 보고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저와 스타일이 비슷하지만 저와는 달리 정말 부드러운 리듬을 갖고 있어요. 다운스윙 순서가 명확하게 보이는데 저도 그렇게 따라 하고 싶어요. 아, 그리고 제 기준에서는 정말 잘생긴 것 같아요.”

쇼플리만 좋아하는 게 아니다. 저스틴 토머스의 플레이 스타일과 샷 메이킹 능력, 맥스 호마의 일관성 있는 몸통 스윙, 캐머런 스미스의 쇼트 게임과 퍼팅 실력도 눈여겨보고 있다. “국내 선수 중에서는 최혜진 프로 스윙을 예전부터 많이 봤어요. 굉장히 거침없고 파워풀하잖아요. 국내에서 보기 힘든 스타일이죠. 정확성과 파워를 겸비해서 너무 부러워요.” 어색하게 인터뷰를 시작한 황유민이 골프 얘기를 하자 술술 말하는 모습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장타가 골프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시원시원한 플레이를 기대하는 KLPGA투어 팬에게 황유민은 단비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경기하다 보면 나무 밑에도 자주 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걸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돌아가는 것보다 확률이 있으면 공격적으로 핀을 향해 쏘는 거침없는 플레이를 좋아해요. 또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내가 하고 싶은 골프를 자신 있게 다 해보고 싶어요. 결과까지 좋기는 바라지 않아요. 제가 생긴 거는 이렇지만 플레이는 겁나 멋있게 하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황유민  프로 데뷔 2022년 / 소속 팀 롯데 / 성적 2022년 정규투어 NH투자증권 레이디스챔피언십 준우승, 2022년 점프투어 11~12차전 
2개 대회 연속 우승, 2021~22년 국가대표, 2022년 아마추어 세계 랭킹 3위

사진_윤석우(49비주얼스튜디오) / 헤어&메이크업_칼라빈 by 서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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