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진영 없나요…‘우물 안 개구리’ 만드는 KLPGA [GD 바운스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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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고진영 없나요…‘우물 안 개구리’ 만드는 KLPGA [GD 바운스백]
  • 한이정 기자
  • 승인 2023.05.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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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송도에서 열린 코리아챔피언십에는 한국프로골프(KPGA)코리안투어가 DP월드투어(구 유러피언투어)와 10년 만에 공동 주관하는 대회답게 해외 취재진이 있었다. 기자실에서 만난 중국 기자와 잠시 대화를 나눴다.

중국 기자는 최근 해외 투어에서 활약 중인 자국 선수들을 나열하며 한껏 자랑했다. 인뤄닝, 우아순, 리하오통 등 선수들이 세계 곳곳에서 우승한 덕분에 팬데믹 동안 우울했던 중국 대륙에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그 기자에게 최근 중국 선수들이 잘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펑산산 키즈, 골프 산업의 성장, 자본 확대 등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얘기 속에서 경종을 울린 얘기가 있었다. “중국은 LPGA투어 대회가 3개나 열리잖아.”

중국에서는 블루베이LPGA, 뷰익LPGA상하이, 아시아나항공오픈 등이 열린 바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대회가 줄줄이 취소됐지만, 올해부터 10월 뷰익LPGA상하이를 시작으로 중국 대회가 재개될 예정이다.

현지에서 LPGA투어 대회가 열리면 시드가 없어도 특별 자격으로 자국 선수들이 일부 출전할 수 있다. 까다로운 코스 세팅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맞붙으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경험을 쌓고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지난해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컨트리클럽에서 열린 BMW레이디스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리디아 고.

국내에도 유일하게 열리는 LPGA투어 대회 BMW레이디스챔피언십이 있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선수들은 BMW레이디스챔피언십에 뛰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BMW레이디스챔피언십이 KLPGA 협회 비공인 대회가 됐기 때문이다. LPGA투어 시드가 있는 선수만 나설 수 있다. 아직 규정에 변화는 없으니 KLPGA 선수들은 같은 날 열리는 상상인·한국경제TV오픈에 출전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3월 KLPGA에 선수 권익 보호 차원에서 해외 투어 진출 제한 규정을 완화하라고 권고했다. 해외 투어 출전을 1년에 3회만 허용하는 부분을 개선하라는 의미였다. 이에 KLPGT는 해외 투어 출전 횟수 제한을 없앴다. 하지만 KLPGA 메이저 대회에 우선으로 출전해야 하며, 해외 투어가 국내에서 개최되는 경우에는 ‘별도 공인 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선수 입장에서는 지난해와 달라진 게 없다. BMW레이디스챔피언십에는 올해도 출전하지 못한다. 3개 대회 제한을 없앤 것도 선수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KLPGA 선수 중에서는 해외 투어 대회를 3개 이상 골라 나갈 만큼 랭킹이 높은 선수가 많지 않다.  

KLPGA투어를 주 무대로 뛰면 세계 랭킹 구조상 랭킹 포인트를 많이 쌓을 수 없다. 2년 동안 12승을 한 박민지가 23위로 KLPGA 선수 중 세계 랭킹이 가장 높고, 50위권에는 김수지, 이예원이 전부다. 

즉, 1년 동안 KLPGA투어에서 톱10 몇 번 기록해서는 50위권 진입도 어렵다. 보통 여자 골프 메이저 대회 출전 자격이 50위권 이내, US여자오픈이 75위다. 자격이 된다 한들 매주 대회가 있는 KLPGA투어를 주 무대로 뛰면서 해외 투어 일정을 잡기 버겁다.

2021년 임희정과 고진영이 연장 접전을 펼치며 뜨거운 호응을 샀지만, 이제 KLPGA선수들과 LPGA선수들의 경쟁은 볼 수 없을지 모른다.
2021년 BMW레이디스오픈에서 임희정과 고진영이 연장 접전을 펼치며 뜨거운 호응을 샀지만, 이제 국내에서 KLPGA선수들과 LPGA선수들의 경쟁은 볼 수 없을지 모른다.

KLPGA 선수들이 해외 대회 경험을 쌓기 가장 좋은 것은 국내에서 열리는 LPGA투어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다. KLPGA 선수에게는 이 길 마저 막혔으니 이제 해외 무대에 경험해 볼 수 있는 길은 거의 없다. 스폰서 초청을 받거나 순수하게 Q스쿨을 뚫고 시드를 확보하는 일뿐이다. LPGA투어 Q스쿨 일정도 KLPGA투어와 맞물려 이마저도 쉽지 않다. 지난해 빡빡한 일정을 모두 뚫고 Q스쿨을 수석으로 합격한 유해란이 대단한 이유다.

지난해 6월 전인지 우승 후 LPGA투어 선수들의 무승이 이어질 때, 이제 국내 선수들의 경쟁력에 한계가 보인다는 회의적인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아타야 티띠꾼(태국), 인뤄닝 등 LPGA투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2000년대생 젊은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해외에서 학교에 다니며 세계 대회를 누비고 경험을 쌓았다. 태국이나 중국은 잘하는 선수에게 해외 진출을 장려한다. 이러니 국내에만 머무는 선수들이 이길 수가 없다. 애초에 경쟁해 볼 기회조차 없다. 환경이 선수들을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드는 셈이다.

성유진은 롯데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기록하고 다음 대회인 JM이글LA챔피언십 출전권을 받았지만 나서지 못했다. 같은 주에 메이저 대회 KLPGA챔피언십이 열리기 때문이다. 만약 KLPGA챔피언십 출전을 포기하고 LA챔피언십에 갔다면 최대 1억원 벌금과 10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을 것이다.
성유진은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LPGA 롯데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기록하고 다음 대회인 JM이글LA챔피언십 출전권을 받았지만 나서지 못했다. 같은 주에 KLPGA 메이저 대회 KLPGA챔피언십이 열리기 때문이다. 만약 KLPGA챔피언십 출전을 포기하고 LA챔피언십에 갔다면 최대 1억원 벌금과 10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을 것이다.

지난 2월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유럽여자투어(LET) 아람코사우디레이디스인터내셔널에 KLPGA 선수들이 너도나도 출전했다. 사우디 자본이 투입되면서 세계 랭킹 300위로 출전 자격을 넓힌 덕분이다. 

일부 사람들은 선수들이 돈 때문에 득달같이 출전하는 거라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물론 큰 상금도 달콤했으나, 선수들이 해외에서 뛸 수 있는 극히 적은 대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돈 때문이라면 선수들이 해외 전지훈련 도중 경유까지 하는 수고를 감수하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KLPGA는 LPGA투어 대회가 국내에 열릴 때 출전하지 않는 선수들을 위해 같은 날 대회를 개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BMW레이디스챔피언십에 출전할 수 있는, 큰 무대를 꿈꾸는 선수들의 기회까지 막는 건 어불성설이다.

고진영 김효주 전인지 등 LPGA투어에서 활약 중인 한국 선수 가운데 Q스쿨을 뚫고 LPGA투어에 진출한 선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최근 유해란 최혜진 안나린이 Q스쿨을 거치긴 했으나 고진영은 KEB하나은행챔피언십, 김효주는 에비앙챔피언십, 전인지는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시드를 차지했다. 

특히 고진영이 우승한 KEB하나은행챔피언십이 국내에서 열린 LPGA투어 대회였다. 고진영이 해외 진출을 결심하고 박민지나 김수지 이예원 이다연 등 막강한 후배들이 등장해 KLPGA투어 판을 키웠다.

국내에서 열린 LPGA투어 대회에서 우승하고 미국에 진출한 고진영의 뒤를 이을 선수는 나올 수 있을까.
국내에서 열린 LPGA투어 대회에서 우승하고 미국에 진출한 고진영의 뒤를 이을 선수는 나올 수 있을까.

지난주 KPGA코리안투어는 DP월드투어와 공동 주관한 코리아챔피언십을 개최했다. 지난해 대상, 상금왕을 차지한 김영수는 DP월드투어 시드를 받고 활동 중이다. 코리안투어가 해외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조치다.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코리아에서 DP월드투어 선수들과 겨뤄볼 수 있었던 코리안투어 선수들은 “생각지도 못한 기회였다. 국내 시드만 있는 내가 해외 대회도 뛰어볼 수 있는 경험 아닌가”하고 기뻐했다. 

해외 대회는 식사, 연습 환경 등 복지도 국내와 차원이 다르다. 그런 분위기를 경험하는 것 자체가 선수 생활에 큰 보탬이 된다. 비록 코리아챔피언십 우승은 파블로 라라자발(스페인)이 했지만, 국내 코스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코리안투어 선수가 우승할 수 있다고 선수끼리 으쌰으쌰 하며 결집했다. 

KLPGA 선수들은 이제 이런 기쁨을 즐기지 못한다. 올해는 더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이번 시즌 BMW레이디스챔피언십은 파주 서원힐스에서 열린다. 서원힐스는 KLPGA에 너무나도 익숙한 곳이다. KLPGA 대회도 자주 열렸고, KLPGA 회원에게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요즘 애들’은 왜 해외 투어에 가지 않을까? 배가 불렀네. 고생하기 싫어서 그런가 봐. ‘요즘’은 해외 무대에 나가기 쉽지 않다. 여자 골프 강국 한국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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