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가 내딛는 조용한 한 발 [People :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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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가 내딛는 조용한 한 발 [People : 1612]
  • 김기찬
  • 승인 2016.12.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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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가 내딛는 조용한 한 발 [People : 1612]

사진_공영규 / 스타일리스트_송지수 / 헤어 & 메이크업_차홍아르더 청담



박인비가 내딛는 조용한 한 발 박인비를 만났다. ‘침묵의 암살자’, ‘명예의 전당 입회자’,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제 이름 앞에 붙는 이런 수식어가 더는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냥 그는 ‘박인비’다. 그 이름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때가 됐다. 글_고형승

네이비 터틀넥 베스트와 러플 디테일의 스트라이프 셔츠,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2년 전 우리는 박인비를 커버스토리(2014년 2월호)로 12페이지에 걸쳐 풀어냈다. 당시만 하더라도 그는 다양한 목표를 설정해놓고 한창 전력 질주하던 시기였다. 아직 결혼 전이었고,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 이전이었으며, 명예의 전당 헌액과 올림픽 출전을 꿈꾸던 때였다. “명예의 전당까지는 아직 먼 길이라 생각한다. 명예의 전당을 목표로 잡지는 않았다. 실현 가능한 목표는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우승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올림픽 대표 팀에 들어가는 것이다. 올림픽 출전 자체가 골프 인생에서는 하이라이트가 될 것 같다. (중략) 골프로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다.”

당시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이다. 2013년에 메이저 대회 3연승을 거두며 ‘올해의 선수상’까지 수상한 박인비는 그야말로 ‘천상천하 인비독존’이라는 말이 아주 잘 어울리는 선수였다. 월드 랭킹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고 국내외 골프 전문가들 역시 당분간은 그를 위협할 선수가 없을 것이라 단언했다. 하지만 박인비는 앞으로도 도전하고 이뤄내야 할 목표와 꿈이 많이 남았다는 듯 한껏 자세를 낮췄다. 그는 항상 겸손한 자세를 유지한다. 팬들을 대할 때도, 관계자들을 대할 때도, 심지어 골프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라든가 “연연하지 않는다”라든가 “그 목표에 최대한 근접하기 위해 또는 완벽함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한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것이 박인비의 강점이고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2년 전 인터뷰를 통해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항상 신중하게 행동하고, 한마디를 하더라도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박인비는 자신이 목표한 바를 모두 이룬 채 우리 앞에 다시 섰다. 그리고 그간 자신에게 벌어진 엄청난 일들과 심경의 변화 그리고 또 다른 목표에 대해 담담히 풀어냈다.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심사숙고해서 말을 이어가는 모습이 2년 전 자신의 목표를 힘주어 말하던 그의 모습과 오버랩되며 묘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박인비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았다.

화이트 롱 셔츠와 그레이 니트 카디건 모두 안데르센.

MY SHOT IN THE OLYMPICS 박인비가 들려준 올림픽 이야기

대부분 1년을 돌아볼 때 “다사다난했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그러면서도 그해는 전체적으로 ‘좋았다’와 ‘나빴다’ 중 하나로 기억 속에 자리 잡는다. 그건 아주 주관적인 느낌에 의존한다. 과거에는 나 역시 좋다든가 나쁘다든가 둘 중 하나로 명확히 그해를 표현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달랐다. 한꺼번에 많은 일이 생겼고 처한 상황에 따른 감정의 기복도 무척 심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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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난히 세상을 떠난 분들이 주위에 많았다. 시아버지도 그중 한 분이다. 여기서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친분이 있던 몇몇과도 그렇게 이별을 했다. 그리고 골프계의 소중한 인물을 우리는 최근에 잃지 않았던가. 아널드 파머 말이다. 그는 내가 2013년 메이저 대회 3연승을 거뒀을 때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에 그는 이렇게 썼다. “이번 시즌에는 점점 빠른 속도로 이 세상 수준을 초월하고 있구나. 그동안 네가 이뤄낸 모든 것을 축하한다.” 당신이 평소 동경하던 사람에게 이런 편지를 받는다고 상상해보라. 얼마나 뭉클하고 행복한 일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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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을 언급하다 갑자기 대상을 이렇게 돌려서 좀 그렇긴 하지만, 18년간 키우던 강아지도 올해 저세상으로 떠나보냈다. 그 외에도 내게는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 유난히 많이 일어난 해가 바로 2016년이다. 부상으로 인해 나 자신에게 실망도 하고 그로 인한 좋지 않은 결과에 좌절도 느꼈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힘든 상황에 낙심을 거듭할 것이고 당연히 최악의 해라고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런 분위기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내 골프 인생에 있어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그 감정을 표현해달라고 한다면 지금 당장은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 몇 년 후에나 답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간단하게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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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부터 2015년까지 계속해서 상승세를 타다가 경기력이 어느 순간 급격하게 떨어진다면 그건 주위로부터 걱정을 들어 마땅한 상황이다. 그것도 부상으로 인해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그 상실감과 절망감은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잘 모른다. 다른 이들이 걱정하는 것 이상으로 나도 걱정을 많이 했다. 올림픽을 앞두고는 고민이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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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올림픽 우리나라 대표 팀 선발을 두고 나를 둘러싼 다양한 소문이 돌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당시에는 올림픽 출전 의사를 밝히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당장 부상 중이었고 내가 생각해도 경기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은 마음이야 컸지만,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진 상태였고 무엇보다 내가 잘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도 부족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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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출전 여부 결정을 앞두고 내 솔직한 심정은 이랬다. 상황이 내가 출전하더라도 결과가 좋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성적에 따른 구설에 다시 오르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다른 후배 선수에게 양보하면 더는 잃을 게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럼 욕먹을 일도 없으니까. 물론 어떤 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비겁하다고 또 손가락질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오히려 포기하는 게 모두를 위해 좋다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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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나 에이전트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올림픽에 출전하길 원했다. 올림픽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들은 “네 심정이나 상황은 충분히 이해하겠는데 그래도 올림픽은 제발 포기하지 말아달라”라고 했다. 내가 힘들 때 항상 의지하고 조언을 구하던 이들이 강력하게 말하니 나도 흔들렸다. 하지만 그걸 무시하고 포기하고 싶었다. 내가 짊어진 짐의 무게가 어느 때보다 무겁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압박감은 어디에서도 느껴본 적이 없는 다른 유형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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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단 한 달 정도 한국에 머물면서 얼마만큼 제 컨디션을 끌어올릴 수 있는지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동안 남편과 상의도 하고 여러 지인을 만나 조언도 들었다. 결국, 넘어질 때 넘어지더라도 돌아가지는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신도 아닌데 뚜껑을 열어보지도 않고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골프는 누가 나가더라도 금메달을 딴다는 보장은 없는 스포츠다. 그런 이유로 나 자신에게 계속해서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그리고는 리우 올림픽이 골프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도전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잘해왔던 자신을 믿고 남은 기간 능력의 최대치를 끌어올려보자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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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보낸 5주간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것도 필요했지만, 정신 상태까지 중무장해야만 했다. 물론 당시에는 올림픽 출전이 가능할까라는 의문도 있었고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이미 절벽을 향해 뛰어가는 말처럼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평소에도 연습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던 내가 그때만큼은 할 수 있는 최대의 양을 소화했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올림픽 출전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 발표를 접한 대부분의 사람은 의아해했다. 컨디션도 완전하지 않은 선수가 왜 욕심을 부리는가에 대한 부분 말이다. 정말 그건 나에게도 큰 용기가 필요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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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을 앞두고 출전한 제주삼다수마스터스에서의 부진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정작 나는 결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주위에서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다수마스터스에서 내가 바란 건 그동안 연습한 샷만 제대로 나와주는 것이었다. 부상 때문에 스윙에서 전환하는 동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밀리는 샷이 자주 발생했다. 볼을 잘 채는, 그러니까 자신 있게 때리는 연습을 집중적으로 했고 대회 내내 만족스러운 샷이 나왔다. 미스 샷은 거의 왼쪽이었다. 비록 미스 컷은 했지만, 쇼트 게임과 퍼팅만 보완하면 큰 무리가 없을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 정도로도 충분한 수확이었다. 오히려 자신감을 찾을 수 있는 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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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은 평생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2020년 도쿄 올림픽도 있지만 내가 그때는 어떻게 될지를 모르니까. 솔직히 한국 선수로서는 네 명의 엔트리에 드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한국에서 골프를 해온 게 아니다 보니 국가를 대표해 출전할 수 있는 대회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인터내셔널크라운이나 한일국가대항전 정도가 전부였던 나에게는 태극 마크를 달고 꿈의 무대인 올림픽에 참가하는 게 골프 선수로서 정말 큰 의미였다. 굳이 골프 선수가 아니더라도 스포츠를 하는 선수에게는 꿈의 무대임이 틀림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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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올림픽은 신기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환경이라 어떤 마인드로 대회에 임해야 하는지 다소 혼란스럽긴 했다. 이런 특수한 환경에서는 너무 긴장하거나 너무 들뜨게 되기 때문에 LPGA투어 대회와 다를 바 없이 플레이하고 있다는 최면을 수없이 걸었다. 여자 골프가 올림픽에서 116년 만에 열리는 것이고 골프 선수로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분위기였지만 그건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살아 있는 골프 선수 중 누가 그 무대를 경험해봤겠나. 내가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리면 그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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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른 선수보다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는 그동안 최악의 상황을 계속 경험하고 간 것이다.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렸고 성적도 좋지 않았다. 더 나빠질 것도 없었다. 준비는 나름 열심히 했지만, 마음을 어느 정도 비운 상태로 경기에 임할 수 있었다. 올림픽에서만큼은 부상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았다. 언론에서 언급되는 부상이라는 말이 너무 지겨웠고, 더는 부상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았다. 또 부상이 좋지 않은 성적의 핑계가 되는 게 더 싫었다. 올림픽을 끝으로 올 시즌을 접는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올림픽을 준비하고 치르는 두 달 동안 마치 4~5개월의 대회 스케줄을 소화한 것 이상으로 기력을 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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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을 다녀와서 다른 종목의 선수 몇몇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정도가 됐다. 금메달리스트 초청 만찬 행사 등을 통해 자주 만나면서 가까워졌다. 진종오(사격), 기보배(양궁), 박상영(펜싱) 선수가 그들이다. 우리는 서로를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이것저것 물어보며 거리를 좁혔다. 정말 웃기지만 나도 그들에게 똑같이 물어보는 첫 질문이 바로 “어떻게 그렇게 잘해요?”다. 20년 가까이 운동하면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이 나누는 첫 대화치곤 정말 웃기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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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거리에 나가면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의 연령층이 정말 다양해졌다. 나는 이렇게 점점 골프가 대중화의 길로 들어선다고 생각한다. 골프는 지금보다 앞으로가 훨씬 발전 가능성이 높은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골프의 대중화를 위해서 나설 기회가 있다면 당연히 목소리를 낼 것이다. 또 골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남을 수 있도록 내가 도울 부분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다.

 

THE GOLF IN MY LIFE 박인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박인비의 팬이라면 더는 궁금한 게 없을 수도 있다. 에디터 역시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 무척 고심했다. 결론은 그냥 정공법을 택하기로 했다. 10년 전 그가 처음 프로 무대에 데뷔했을 때의 느낌과 현재의 감정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순서대로 들어보고 싶었다. 아무런 양념 없이. 박인비는 마치 회고록 인터뷰를 하듯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로 임했다.

 

골프다이제스트 : 10년 전인 2006년에는 뭘 하고 있었나? 박인비 : LPGA 2부투어인 퓨처스투어에서 활동했다. 주니어 선수 경력을 마치고 갓 프로에 데뷔했을 때였다. 그때는 골프가 정말 쉬웠다. 주니어 선수 시절에는 거의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을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퓨처스투어는 프로 무대이긴 했지만 별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무서울 게 없었다. ‘프로 대회지만 어차피 다 같은 골프장이고 하루에 4언더파씩만 치면 우승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때는 골프가 어렵다는 걸 몰랐다.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볼을 못 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기는 생각이었다. 그 레벨에서는 프로의 세계를 전혀 가늠할 수 없을 뿐이었다.

퓨처스투어라도 역시 프로 무대 아닌가? 그렇다. 대회에 나가면 보통 50만~60만원 정도 벌었는데 처음 내가 번 돈이었기 때문에 정말 행복했다. 그때 골프를 통해 돈을 버는 직업을 가졌다는 게 실감이 났다. 그리고 차등 분배가 되는 상금을 보며 ‘선수는 모든 것을 성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당시의 자신감이라면 언젠가는 메이저 대회는 물론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을 것 같다. 그때는 안니카 소렌스탐이 가장 뜨거운 선수였다. 그 선수를 보면서 ‘나도 저 선수만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게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자신감이 언제 무너졌나? LPGA투어로 진출한 이후 바로 무너졌다. 2007년에 루키였는데 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미스 컷을 하거나 하위권이었다. US여자오픈에서 처음으로 톱10에 진입했는데 그때 성적이 공동 4위였다. 다른 대회 열 번 우승한 것보다 좋았다. 톱10에 한 번 드는 게 목표였으니까. 그렇게 잘되던 샷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도무지 샷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상금 랭킹 37위로 첫 시즌을 마쳤다. 신인이었으니까 적응하는 시기였다고 자신을 위로해봐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지금의 박인비를 생각하면 상상이 가지 않는다. US여자오픈에서 4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이듬해 시드를 걱정해야 했다. 다시 퀄리파잉스쿨을 가야 하나, 아니면 골프를 그만둬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US여자오픈을 기점으로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했던 것 같다.

이듬해에 US여자오픈에서 우승했고 그 이후에 또 슬럼프가 찾아왔다. 2008년 후반부터 2009년까지 전반적으로 샷이 좋지 않다는 징조는 느끼고 있었다. 2010년과 2011년은 미국과 일본을 왔다 갔다 하면서 투어 생활을 할 때였는데 그때는 샷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입스 비슷한 증상이었는데 나는 그걸 입스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가는 것도, 골프장에 가는 것도 싫었다. 골프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택하기 위해 많은 생각을 했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생각한 게 ‘골프를 그만두고 뭘 할까?’, ‘지금부터 뭐 먹고살아야 하지?’였다.

그런 슬럼프를 극복하고 프로 데뷔 후 10년 동안 많은 업적을 쌓아 올렸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을 꼽아보자면? 가장 인상적이었던 해가 바로 2013년이다. 메이저 대회 3연승을 했을 때는 내가 생각해도 압권이었다. US여자오픈 우승이나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건 한 대회에 국한된 것이기 때문에 지금 다시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메이저 대회 3연승은 백번을 다시 도전해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천운이 따랐다는 뜻인가? 골프 선수로서 메이저 대회의 3연승은 큰 행운을 맞이한 것이다. 하늘이 준 기회였던 것 같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가끔 남편과 농담을 주고받는데 “내년에는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을 하면 정말 좋겠어”라고 하면 그렇게 된다. 또 “다른 대회는 모두 망해도 좋으니까 올림픽에서 금메달만 딸 수 있으면 좋겠어”라고 했는데 올해 진짜 다른 대회는 다 망했다. 최근 3~4년 동안 절실하게 원한 게 말하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모두 이뤄졌다.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한 일들을 내가 직접 겪고 나니, 어떤 것이든 이루지 못할 일은 없다는 걸 느꼈다. 나는 사람들에게 허황한 꿈은 없으며 오히려 꿈을 높고 크게 잡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올해 힘든 점이 있었다면? 일단 감정 기복이 심한 한 해였다. 골프장에 나가면 뭘 해야겠다는 의욕이 싹 사라졌다. 골프를 하는 게 즐겁고 골프장에 있는 게 즐거워야 하는데 그냥 멍한 상태가 지속됐다. 이건 2008년부터 찾아온 슬럼프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는 테크닉에서 오는 슬럼프였다면 올해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의 문제였다.

그 원인이 명예의 전당 헌액이라는 목표를 이뤘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허탈감 때문은 아니었나? 그럴 수도 있다. 모든 골프 선수의 마지막 꿈은 명예의 전당 입성이니까. 지난해 말, 포인트를 모두 채우고 대회 수만 충족하면 명예의 전당에 가입할 수 있었다. 사실 입성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목표가 중요하다.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어차피 이룰 거 다 이뤘으니 내년부터는 하루하루가 더 행복하겠지? 그러면 편안하게 즐기면서 플레이할 수 있고 성적도 더 잘 나올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목표 의식 없이 즐기면서 재미있게 투어 생활을 하는 게 프로로서는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건 나 자신에게 불행한 일이다. 물론 투어 생활 자체를 즐기는 성격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누구보다 내가 코스에서 즐거워야 한다. 나를 즐겁게 하는 건 훌륭한 퍼포먼스다. 선수는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하고 그게 선수가 행복할 수 있는 첫 번째 길이다. 그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 않나? 물론이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여행도 하고 투어 생활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LPGA투어에서 중•하위권에 머물더라도 그것 자체로 행복이다. 하지만 나는 여행보다 안정적인 삶을 원한다. 코스에서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의식이 뚜렷한 편이다. 내가 이 세계에서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 내려올 것이다. 물론 오래 골프를 하고 싶다. 잘하는 모습으로 오래. 그게 내가 원하는 바고 그렇게 되기 위해 매년 노력할 것이다.

월드 랭킹 1위를 리디아 고에게 내준 지가 오래전이다. 다시 한 번 도전해볼 생각은 없나? 다시 내년부터는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생각이다. 그때부터는 당연히 그것이 새로운 목표가 될 것이다. 세계 랭킹 1위를 다시 가져오는 것. 그리고 메이저 대회에서 승수를 더 챙기는 것. 예년처럼 서른 개에 육박하는 대회를 소화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적절한 스케줄링을 통해 메이저 대회 위주로 출전할 계획이다. 대회에 참가하지 않을 때는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컨디션 조절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번에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단기간에 걸친 집중력 있는 훈련 방법도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10년 후인 2026년엔 뭘 하고 있을까? 우선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도전해보고 싶다. 리우 올림픽에서 116년 만에 금메달을 땄으니 2020년에 그걸 디펜딩하면 정말 좋을 것 같다. 2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2026년까지 투어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아마 골프나 스포츠 관련 일을 하고 있지 않겠냐는 생각은 든다. 아직 그에 대한 잔가지를 치지는 못했지만, 골프 관련 일을 하다가 스포츠 관련 일로 넓힐 수도 있는 거고.

IOC 선수 위원으로 활동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지 않았나? 현재 대학원에서 스포츠 외교를 전공하고 있지만,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이번 올림픽을 통해 다른 스포츠에 대해 볼 수 있는 시야도 생긴 것 같다.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와 종목의 관련자와 친분을 쌓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스포츠 외교나 행정 분야에도 많은 선수들이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우리 다음 세대의 선수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자신이 속한 종목의 활성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무엇보다 선수들이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설계해나갈 수 있는지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 고민과 교육을 위한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나서서 그 역할을 하고 싶다.

그런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은데 재단을 설립할 생각은 없나? 재단 설립에 대한 생각을 전혀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은 이르다는 생각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돕고 싶을 뿐이다. 재단과 관련해서는 기회가 자연스럽게 찾아올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은 조용히 내 위치에서 탑을 쌓아나가다 보면 그것이 언젠가는 형체를 드러낼 때가 올 것이다. 순리대로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기회가 올 것이고 나는 그걸 잡으면 된다. 오지 않으면? 그냥 애 낳고 살면 되고.

아, 그러고 보니 2세 계획은 어떻게 되나? 아이를 낳게 되면 그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내가 아이를 직접 돌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조금 늦추는 게 좋다고 본다. 요즘은 의학도 많이 발달했고 늦게 아이를 갖는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건 없으니까. 그때 더 정성스럽게 키우면 된다. 우선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아이를 갖지 않을 계획이다. 나는 한 명만 낳고 싶은데 남편은 둘 낳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쌍둥이를 가져야 하나? 이번에 강아지(골든 레트리버)를 한 마리 입양했다. 이름이 리우다. 이제 4개월 조금 넘었는데 큰아들이라고 생각하고 키우고 있다. 우리 부부는 지금 그 친구에게 거의 반 미쳐 있다.

한국 여자 골프에 대해 전 세계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골프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나? 골프는 무조건 퍼포먼스로 말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우리나라 선수들은 정말 잘하고 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한국 투어가 글로벌 투어가 됐으면 한다는 것. 개인적으로 외국을 다니면서 대회에 참가하는 게 정말 힘들고 싫다. 만약 한국 투어가 LPGA투어보다 좋고 가장 큰 투어라면 다 여기로 모이지 않겠나. 당장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아주 이기적인 생각을 해봤다. KLPGA투어는 이제 규모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신경을 더 썼으면 좋겠다. 글로벌 투어를 논할 때 한국 선수만 활동하고 있다면 그건 글로벌의 개념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있어야 하고 상금 규모는 물론이고 잘 짜인 투어 시스템도 갖춰져 있어야 그렇게 불릴 수 있다. 최근 KLPGA투어의 성장세나 가능성을 봤을 때는 장기간 목표만 잘 세운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본다.

KLPGA에서 이 인터뷰를 본다면 의견을 직접 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협회를 위해 일할 생각은 없나? 한국에는 이미 훌륭한 선배들이 많이 있다. 나중에 기회가 되고 도울 일이 있다면 분명 의향은 있지만, 지금은 투어 생활이 더 즐겁다. 그때는 그때 맞는 선택을 하면 되고.

최근 KLPGA투어에서 눈여겨본 한국 선수가 있나? 사실 나도 TV를 통해 보는 게 전부다. 생각지도 못한 선수가 우승하고 1년에 6~7승씩 하는 추세니 섣불리 어떤 선수가 잘한다고 판단하기 힘들 정도다. 모든 선수가 잠재력은 가지고 있다. 투어 20위권에 드는 선수들은 이미 내 예측 범위를 넘어섰다. 그들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선수층이 아주 두껍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도대체 그게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다.

‘인비 키즈’를 비롯한 다음 세대의 골퍼들은 이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나? 건강한 정신을 갖춘 선수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어릴 때부터 운동하는 이유가 건강상의 이유도 있지만 건강한 정신을 갖추기 위함도 있지 않나. 건강한 정신세계를 가진 친구들이 골프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 물론 지금 선수들이 그렇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앞으로 시대가 흐르면 흐를수록 건강한 생각을 하는 운동선수들이 존경받는 사회가 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다. 우리나라 골프 선수들은 스타성이나 실력 면에서는 어디에 내놔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LPGA투어에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우리나라처럼 실력 있는 선수들이 계속해서 배출되는 나라는 없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가 실력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건 확실하다. 그에 걸맞은 모범적인 선수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세계 어느 투어에서 활동하든 선수의 실력만큼 매너와 에티켓 역시 세계 최고가 되었으면 한다.

골프로는 모든 걸 이뤘지만, 혹시 부러운 게 있나? 이번에 한국에 오래 머물면서 16~17년 만에 계절이 바뀌는 걸 봤다. ‘아, 이게 계절이 바뀌는 거구나’라는 걸 새삼 느꼈다. 옷장에 걸려 있던 겨울옷을 꺼내 입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를 알게 됐다. 나는 그동안 한 군데에 정착한 삶을 살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 그 계절에 맞는 옷만 챙겨서 가면 그만이다. 계절이 바뀌는 것도 느낄 새가 없었다.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그런 사소한 것을 누리고 사는 삶이 그저 부럽다.

그럼 골프 분야에서 부러운 사람이 있나? 당연히 있다. 타이거 우즈나 안니카 소렌스탐 그리고 잭 니클라우스나 아널드 파머도. 내가 주로 남자 선수들을 롤모델로 삼는 이유는 사회 공헌 활동이나 골프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골프 선수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그 후의 삶이 한국 선수들과는 비교되는 대표적인 케이스들이다. 나는 한국 선수 중에도 사회 공헌이나 비즈니스 분야에 많은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남자나 여자 선수 중에도 이런 분야에 리더가 나와줬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박)세리 언니가 은퇴했으니까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기대가 된다. 제2의 인생을 나도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내 팬들과 주니어 선수들에게 한마디? 정말 많이 응원해주신다는 걸 올림픽을 계기로 많이 느꼈다. 힘든데 새벽까지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한다. 주니어 골퍼들에게는 내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실력이나 결과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건강한 멘탈을 가진 선수로 자라나길 바란다. 골프의 매력은 끝없이 도전해야 한다는 점과 끊임없이 인내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 그 안에서 오는 기쁨과 희열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이런 여러 가지 감정을 어린 시절부터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스포츠가 바로 골프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골프를 사랑하고 즐기면 좋겠다.

 

나를 즐겁게 하는 건 훌륭한 퍼포먼스다. 선수는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하고 그게 선수가 행복할 수 있는 첫 번째 길이다. 그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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