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최고인 세인트앤드루스 [Feature: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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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최고인 세인트앤드루스 [Feature:1507]
  • 김기찬
  • 승인 2015.07.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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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최고인 세인트앤드루스 [Feature:1507]

일러스트_마크 울릭센(Mark Ulriksen)

 

다시 올드코스를 찾은 브리티시오픈을 앞두고, 그곳에서 잠시 대학을 다녔던 한 편집자의 풋풋한 추억에 귀를 기울이며 산뜻한 일러스트레이션을 함께 감상해보자.

글_맥스 애들러(Max Adler)

 

나는 자전거 위에서 세인트앤드루스를 처음 봤다. 항공사의 실수로 내 클럽과 옷가방은 엉뚱한 곳으로 가버렸지만 세 번째 수하물, 뉴욕 자전거 가게의 전문가가 능숙하게 분해해서 포장해준 산악자전거는 제대로 도착했다. 그건 다행이었는데, 에든버러 기차역으로 가는 버스는 너무 붐벼서 그것들을 전부 짊어졌다가는 도저히 탈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시절의 나는 시간은 넘치고 돈은 빠듯한 상태였기 때문에, 마침내 루허스에 도착했을 때 5파운드를 내고 택시를 타느니 기차역에서 상자를 열고 몇 안 되는 장비를 이용해서, 전혀 능숙하지 않은 솜씨로, 자전거를 직접 조립했다. 8월의 화창한 날이었다. 바람 때문에 페달을 밟기 힘들었지만, 밤새 비행기를 타고 온 여독을 날려주는 스코틀랜드의 강풍은 어쩐지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것 같았다. 표지판에는 세인트앤드루스가 직선으로 표시되어 있었고, 머잖아 올드그레이툰(The Auld Gray Toon)이 자전거 손잡이 위로 눈에 들어왔다. 올드코스 호텔이 바로 저 앞에 있었다. 브리티시오픈 중계를 통해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골퍼들도. 일부는 가방을 메고 일부는 푸시카트를 밀면서 햇볕에 바짝 마른 페어웨이를 지나 조금 더 푸른 그린으로 가고 있었다.

 





코스는 쉬워 보였다. 이 말이 세계에서 가장 유서 깊은 골프코스를 묘사하기에 끔찍하게 잘못된 표현이며, 공공연한 자리에서 털어놓지 않는 게 좋다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대서양을 건너오는 사이에 원근감이 고장난 게 아니라면 대부분의 그린은 3번 우드 샷으로 얼마든지 공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 비거리가 긴 편도 아니었다. 얼마 후에야 알게 됐는데, 이곳에는 여섯 개의 코스가 있었다. 유명한 호텔 바로 위에 놓인 건 올드코스가 아니라 파30에 전장이 1520야드에 불과한 발고브(Balgove)였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길이 포장도로에서 자갈길로 바뀌었다. 흔들리는 바퀴와 덜거덕거리는 두개골은 나의 어리석음을 확인시켜주는 듯했다. 일반적인 여행자였다면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을 만한 착각이었지만, 나는 랜섬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앞으로 21개월을 그곳에서 보낼 예정이었다. ‘다방면에 재능이 있는’ 미국 체육장학생 출신의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학비 전액과 숙박비, 그리고 여행 경비까지 지원하는 이 프로그램은 파인밸리의 유명한 ‘독재자’였던 어니 랜섬(Ernie Ransome)이 골프계에 기여한 수많은 공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되었다. 사업가로 성공한 랜섬은 여러 골프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프레지던츠컵을 발족했으며, 40년대에는 프린스턴에서 미식축구와 라크로스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나? 워싱턴앤리 대학에서 예술을 전공하고 골프 이력은 말할 수 없이 변변찮았던 나는 아마도 신청자들의 수준을 많이 끌어내렸을 것이다.

 

 

 

 



안전한 세인트앤드루스 1413년에 설립된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은 영어권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대학이다. 캠퍼스는 대부분 마을의 상점과 술집과 주택들을 둘러싸고 있는 오래된 돌담 울타리 안에 있었다. 인적 없는 골목으로 접어들면 1000년 전의 과거로 들어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늦은 밤에 컴컴하고 비좁은 길을 걷다가 반대편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나타나면 중세의 느낌은 더 강렬해졌다. 그의 발걸음에서 모든 정보(몸무게, 체구, 속도, 성질, 의도)가 메아리치는 것 같았고, 그러다 보면 긴 칼이 쨍그랑거리는 소리는 나지 않는지 신경이 곤두섰다. 물론 주먹에 힘을 더하기 위해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라이터를 움켜쥐는 순간, 의문의 사나이는 거의 언제나(한 번만 제외하고) 말없이 스쳐 지나간다. 그러면 안도감에 심장이 벌렁거린다. 세인트앤드루스가 거친 고장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입학식에 들창코의 축구팬이 한 명이라면, 아버지의 신용카드를 챙겨서 런던이나 브뤼셀에서 그저 시를 읽거나 연애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온 세련된 한량은 열 명이었다. 신학이 대세였던 르네상스 이전의 학생들에게는 시대의 폭력이 삶에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다. 마을에는 암흑시대의 악명 높은 처형과 관련된 표지판이 적지 않았다. 푸른색 바탕에 흰 십자가가 있는 스코틀랜드의 국기도 성 앤드루가 학살된 십자가를 가리킨다. 하지만 내가 아는 세인트앤드루스는 옷 대신 램프갓을 입고 술에 취해 정신이 나간 신입생도 기숙사에 안전하게 돌아갈 거라고 믿을 수 있는 곳이었다. 실제로 왕실에서는 윌리엄 왕자를 어디든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경호원이 어슬렁거리는 걸 본 건 여왕이 손자의 졸업식에 참가했던 날뿐이었다. 왕자는 골프를 하지는 않았지만 학생들과 같은 술집에 드나들었고, 어느 날 밤에는 전혀 왕족을 만날 분위기가 아닌 상황에서 나는 그와 악수를 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그가 예술사에서 지리학으로 전공을 바꾸자, 제2의 케이트 미들턴을 꿈꾸는 쉰 명의 여학생이 따라서 전공을 바꿨다고 한다. 내가 사는 기숙사의 가장 좋은 점은 찾기가 쉽다는 것이었다. 고딕풍의 돌들로 이루어진 이곳에서 유일하게 20세기 스타일로 콘크리트를 들이부어 만든 큐빅 모양의 가노시 하우스는 시큰거리는 바우하우스의 엄지손가락처럼 도드라졌다. 우리 층에는 11명의 대학원생이 있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주방은 작은 보트에 달렸을 법한 수준이었고, 옆에 달린 방에는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인스턴트식품 같은 걸 보관하는 개인 찬장이 있었는데 절반 정도는 자물쇠를 채워놓고 사용했다. 상하이에서 온 네 명의 여자들은 전기밥솥과 실에 꿴 말린 고추, 그리고 종류를 짐작할 수 없는 피클 접시로 그 공간을 점령했다. 다들 대단히 친절했고, 그 중에 누가 뭘 먹어보라고 권할 때마다 내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한 번은 주방에 연기가 어찌나 심한지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나는 프라이팬을 침착하게 처리한 여자의 이름은 핑이었고, 그들 중에서 제일 예뻤다. 나는 그녀의 이름이 내 아이언과 같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영어 실력은 좋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처럼 그녀는 마케팅을 공부했고, 질문을 하면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음식에 대한 불평을 시시콜콜 늘어놓을 마음은 없지만, 외국에서 지내다 보면 생계가 큰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작은 주방에서 처음으로 직접 요리해먹는 법을 배웠다. 대학 식당이 다양하고 양껏 먹을 수 있는 미국처럼 너그럽지 않다는 주의를 들었던 터라 비를 흠뻑 맞으며 18홀을 마친 후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빈 죽 그릇을 움켜쥐어야 하는 상황을 염려한 나는 식비를 직접 관리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쑤시개부터 주류, 심지어 자동차 보험까지 모든 것을 파는 영국의 대형마트 체인인 테스코에서 나는 세인트앤드루스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풍경과 마주쳤다. 장을 보러 온 남자가 우유의 유통기한을 확인하는데, 한쪽 어깨에 골프 가방을 메고 있었다. 그곳은 골프 타운이었다. 테스코에 가서 소시지와 훈제베이컨, 염소우유(라벨의 색깔이 일반우유의 2퍼센트 저지방과 너무 비슷해서 혼동될 때가 많았다) 등의 제품 사이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김없이 골프클럽을 든 사람을 만나곤 했다. 세인트앤드루스에는 인구당 5이하의 핸디캡 보유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 아무튼 현지인들은 그렇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들의 말을 믿는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골프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내가 사랑에 빠진 이들 그곳에 가자마자 절친한 친구를 사귀었다. 앨러스데어 우드먼은 억양이 근사한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누가 자신을 영국인으로 오해하면 짐짓 화를 내는 친구였다. 그리고 대학 골프클럽의 주장이었는데, 이 말은 150명의 회원이 자유롭게 참가하는 주례 회의의 의장을 맡는다는 뜻이었다. 으레 폭주로 이어지는 회의에는 40명 안팎의 핵심 멤버가 모였고, 세 팀(1진, 2진, 3진)이 다른 대학과 시합을 벌였다. 매치 결과와 다른 공지 전달이 끝나면 우리는 스테이크파이나 피시앤칩으로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고, 그러면 서너 명씩(그러다가 두 명이 되고 한 명이 되는) 모여 앉은 테이블에 커다란 피처 잔이 돌면서 아무도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지경이 될 때까지 노래를 불렀다. 숙취로 시달리면서도 좋은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능력은 엄청난 존경의 대상이었다. 보아하니 그들이 골퍼를 평가하는 기준은 두 가지인 것 같았다. 플레이를 얼마나 잘하는가, 그리고 연습장을 거치지 않고 휘청거리며 1번 홀의 티박스로 올라가서 얼마나 플레이를 잘하는가. 대학의 공식 지원이 없었음에도(유급 코치는 없었지만, 셔츠와 가방, 그리고 이동 경비로 약간의 지원을 받았다) 수준은 높았다. 핸디캡이 2인 내가 겨우 2진이었고, 실력을 한참 쌓은 후에야 간신히 1진에 진입했을 정도였다. 다른 곳에서도 셀 수 없이 많은 라운드를 했지만, 올드코스에는 한 140번쯤 선 것 같은데 플레이 반, 캐디로서 반이었다. 현지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나는 110파운드만 내고 총 여섯 개 코스에서 1년간 무제한 골프를 할 수 있었는데, 그 당시에 관광객이 올드코스에서 라운드를 한 번 하는 데 드는 비용이었다. 링크스골프에 푹 빠지면서 실력이 놀랍게 향상되었다. 비록 내 골프인생에서 내세울 만한 업적은 나중에 2013년도 US아마추어에서 컷 탈락한 것이었지만, 게임이 가장 날카로웠던 때는 스코틀랜드 시절이었고, 그건 아마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학교생활은 어땠는지 궁금할 것이다. 나는 수업에 참가하고, 학위를 받았으며, 영어과 학생들과 나누는 좀 더 순한, 보다 지적인 관계도 즐거웠다. 하지만 이 얘기는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이제 한 가지 얘기를 할 수 있는 지면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올해 브리티시오픈을 보면 18번 홀에 버티고 서서 그 어느 건물보다 슬라이스 티 샷에 더 많이 얻어맞은 건물이 우아한 루삭스 호텔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바로 거기서 던디 출신으로 아름다운 스카프를 참 많이 가지고 있었던 갈색머리의 알렉산드라와 첫 데이트를 했다. 위스키 시음행사에 참가한 것인데, 그녀의 고향인 스코틀랜드의 대표적인 술을 마시려고 노력하면 점수를 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위스키를 마시지 않았다(그녀는 와인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두 사람 분인 열두 잔을 혼자 다 마셨다. 시음 행사는 한 종류의 위스키가 나올 때마다 양조장 직원이 나와서 독특한 장점을 설명했다. 시음을 하고 나면 참가자들이 어떤 맛이었는지 느낌을 말하곤 했다. 나는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미스터리 위스키’가 나왔다. 나는 두 잔을 연거푸 마셨고, 그러자 자신감이 솟구쳤는데, 어쩌면 이제 더 이상 마실 위스키가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인지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두드렸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이 위스키가 오늘 맛본 중에 가장 월등하다고 주장한 후 그 맛을 칭송하는 조잡한 시를 읊었다. 미스터리 위스키의 브랜드? 테스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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