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오랜 역사를 거듭하며 발전했다. 귀족 중심에서 대중화를 이뤄냈고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극복했다. 신체와 기량, 첨단 과학의 발달로 수많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그렇게 최초의 골프 역사가 지금도 흐른다.
◇ 인종차별을 깬 최초의 흑인들
미국골프협회(USGA)가 128년 사상 처음으로 흑인 회장을 선출했다. 뿌리 깊은 인종차별의 역사를 깨고 2023년부터 회장직을 맡을 상징적인 협회의 얼굴은 프레드 퍼폴이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는 유색인종에게 문호를 개방하지 않았다. 1960년 성역을 허문 건 찰리 시퍼드(사진)다. 그는 백인만 회원이 될 수 있었던 PGA투어 최초의 흑인 골퍼로 2004년 명예의 전당에 입회한 선구자다. 이후 리 엘더가 1975년 마스터스토너먼트, 1979년 라이더컵에 최초로 출전한 흑인 골퍼로 역사에 남았다. 타이거 우즈가 1997년 마스터스 최초의 유색인종 우승자로 등극하며 ‘골프 황제’라는 칭호를 들을 수 있었던 건 인종차별을 극복한 영웅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즈는 시퍼드의 이름을 따서 아들 찰리의 이름을 지었다.
◇ 디오픈 탄생의 비밀
인류 최초의 프로 골퍼는 누구일까. 스코틀랜드 문헌에 따르면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의 헤드 프로를 겸하던 앨런 로버트슨(사진)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그는 죽을 때까지 내기 골프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무적 골퍼’였다. 1843년 윌리 던과 열흘 동안 160홀을 돌며 내기 골프를 한 명승부는 인류 최초의 프로 골퍼 맞대결로 역사에 남았다. 당연히 승자는 로버트슨이었다. 골프로 영국 전역을 접수한 그는 가장 오래된 골프 대회 디오픈 탄생 배경의 숨은 공로자였다. 디오픈을 처음 개최한 프레스트윅골프클럽의 설계자 올드 톰 모리스는 로버트슨이 죽자 ‘이젠 누가 최고의 골퍼인가’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최강자를 가리기 위해 프레스트윅에서 챔피언 벨트를 걸고 대회를 열었다. 당시 12홀 코스였던 프레스트윅을 하루에 3라운드를 도는 36홀 경기였다. 이 대회가 1860년 탄생한 디오픈이다. 골프 역사상 최초의 앨버트로스도 프레스트윅에서 나왔다. 올드 톰은 1번홀을 파격적인 파6홀로 만들었고, 1870년 디오픈에서 그의 아들 영 톰 모리스가 기준 타수보다 3타 적게 홀아웃에 성공해 앨버트로스를 기록했다.
◇ 기록도 나이도 상식도 깨다
골프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진 사라젠(사진)은 기록 파괴자였다. 1922년 US오픈과 PGA챔피언십 정상에 오른 뒤 1932년 디오픈, 1935년 마스터스 우승을 일궈내며 4대 메이저를 제패해 세계 최초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논란의 여지가 있는 보비 존스 예외). 특히 첫 출전한 마스터스에서 결정적인 앨버트로스를 기록하며 역전 우승을 이뤄내 극적인 명승부를 만들었다. 나이도 그를 막지 못했다. 1973년 디오픈에서 홀인원을 기록했는데 그의 나이 71세였다. 생각도 깨어 있었다. 벙커 샷으로 애를 먹던 그는 이륙하는 비행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피칭 웨지 바닥에 금속을 대고 납땜을 한 샌드 웨지를 발명했다. 지금도 디자인에 큰 변화가 없는 샌드 웨지의 바운스를 고안한 주인공이다.
◇ 세상에 도전한 위대한 여성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 두 개와 은메달 한 개를 획득했고, 야구와 농구, 볼링, 권투, 수영 선수로 종목을 가리지 않고 맹활약했다. 올림픽에서는 투창과 80m 허들, 높이뛰기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따냈지만 높이뛰기에서는 배면 넘기가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금메달을 박탈당했다. 골프채를 잡은 20대 후반에는 1946년 7월부터 13개월 동안 17개 대회 연속 우승 신기록을 세웠고, 1947년 프로로 전향한 뒤에는 9년 동안 메이저 대회 10승을 포함해 통산 41승을 달성했다. 특히 1945년 PGA투어 대회에 세 차례 출전해 두 번이나 컷 통과에 성공했다. PGA투어 컷 통과는 여성 최초의 기록이다. 이보다 뛰어난 스포츠 스타가 있을까. 바로 베이브(당시 홈런 타자 베이브 루스의 이름을 딴 애칭) 디드릭슨 자하리아스(사진)의 위대한 여정이다. 엄청난 인기몰이를 한 자하리아스는 1950년 LPGA투어가 출범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그는 두 차례나 대장암 수술을 받으면서도 마지막까지 US여자오픈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42세에 세상을 떠났다.
◇ 미스터 59
골프에서는 18홀 50대 타수를 기록하면 ‘꿈의 스코어’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골프 장비의 비약적 발전으로 심심찮게 나오고 있지만 과거에는 진귀한 스코어였다. PGA투어에서 총 12차례 60타 미만 스코어가 나왔다. 사상 최초로 꿈의 스코어를 작성한 선수는 알 가이버거(사진)다. 1977년 멤피스클래식 2라운드에서 13언더파 59타를 적어냈다. 6월의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고 골프 장비도 열악한 시절에 나온 꿈같은 스코어였다. 그때부터 가이버거는 ‘미스터 59’로 불렸다. 이후 14년 뒤인 1991년 칩 벡이 59타를 기록했으니 얼마나 어려운 스코어인가. 짐 퓨릭은 2013년 59타, 2016년 58타를 작성해 유일하게 두 차례나 50대 타수를 기록했다. LPGA투어에서는 2001년 안니카 소렌스탐이 13언더파 59타를 작성한 것이 유일한 기록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이시카와 료가 일본프로골프투어에서 12언더파 58타를 기록했고, 한국에서는 KLPGA 드림투어 시드 순위전에서 허윤나가 13언더파 59타로 국내 최초 꿈의 스코어를 작성했다.
◇ 300야드의 벽
괴력의 장타자를 논할 때 무조건 빠지지 않는 악동이 있다. 1991년 PGA투어 데뷔와 함께 평균 드라이브 비거리 288.9야드를 찍으며 등장한 존 데일리(사진)는 1994년을 제외하고 2002년까지 총 11차례 장타왕을 독식했다. 장타 대회 선수를 연상시키는 오버스윙이 트레이드마크인 데일리는 1997년 302.0야드의 괴력을 과시하며 골프 역사상 처음으로 300야드 벽을 허물었다. 이후에도 비거리를 계속 늘인 데일리는 2003년 314.3야드를 기록하고도 행크 퀴니에게 장타왕 자리를 내줬다. 321.4야드를 기록한 퀴니는 처음으로 320야드 벽을 깼다. 메탈 헤드 드라이버의 등장과 첨단 과학을 입힌 골프공은 비거리를 늘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8kg을 늘린 벌크 업으로 비거리를 늘인 브라이슨 디섐보는 2021년 323.7야드를 기록, 데일리급 존재감을 발산하며 장타왕 계보를 이었다. 데일리는 2016년 챔피언스투어에 진출해 곧바로 또 장타왕에 올랐는데 여전히 300야드의 벽을 깬 303.6야드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