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경기 중 심판이 없는 유일한 스포츠다. 골퍼의 양심이 곧 심판이다. 하지만 자신을 속이면 대가는 처참하다.
한 전도유망한 골퍼가 벌타로 끝낼 수 있던 경기를 한순간 잘못된 판단 탓에 골프 인생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게 생겼다. 올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최고 스타로 떠오른 샛별, 윤이나(19) 이야기다.
윤이나는 25일 자신의 매니지먼트사인 크라우닝을 통해 지난 달 열린 DB그룹 제36회 한국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 1라운드에서 저지른 오구 플레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윤이나가 밝힌 당시 사건은 이랬다. 대회 1라운드 15번홀에서 윤이나의 티 샷이 오른쪽으로 밀려 깊은 러프 속에 빠졌다. 그는 공을 찾다가 다른 공을 착각하고 그대로 플레이를 진행했다. 경기 도중 자신의 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순간 판단이 서지 않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플레이를 이어갔다. 사과문을 통해 밝힌 그의 주장이다.
바로 오구 플레이를 고백했다면 2벌타를 받고 끝났을 일이다. 당시 윤이나는 1라운드 첫 홀인 10번홀부터 최악의 섹스튜플보기로 무너졌다가 곧바로 11번홀에서 홀인원을 기록하며 기사회생했다. 이후 15번홀에서 오구 플레이를 한 것. 그는 이 대회에서 컷 탈락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윤이나는 이 사실을 한 달 남짓 꼭꼭 숨겼다. 그와 함께 일하던 캐디가 공개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묻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매니지먼트사가 이 사실을 파악한 건 한 달 뒤다. 매니지먼트사는 지난 14일 에버콜라겐퀸즈크라운마스터즈 1라운드 때 선수에게 직접 오구 플레이 사실 여부를 확인했고, 이튿날 바로 대한골프협회에 오구 플레이를 신고했다.
여기까지도 이미 문제는 심각하다. 그런데 윤이나는 신고 후에도 대회 출전을 강행했다. 1라운드 당시 버디만 7개를 잡아 선두에 올랐던 윤이나는 유야무야 넘어가 결국 프로 데뷔 첫 우승을 차지했다. 동료들에게 축하 세리머니도 받았다. 뒤늦은 자진 신고에 대회 기간 꼼수까지, 선수 윤리 문제를 넘어 괘씸죄가 더해질 만한 상황이다. 고의적인 오구 플레이는 선수 자격 정지까지 나올 수 있는 중징계 사안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인지한 모두가 침묵했다.
윤이나는 이제 프로에 갓 데뷔한 어린 선수다. 눈 앞에 펼쳐진 성적만 보고 잘못된 판단을 했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한 번쯤 치기 어린 실수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선수를 지켜보던 캐디부터 주변 어른들은 이 사실을 알고도 넘어가기 바빴다. 이제 우리나이 스무살이 된 선수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법을 가르치지 못했다.
윤이나는 “협회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성적에만 연연했던 지난 날들을 처음부터 되짚어보며 반성하는 시간을 갖겠다. 제 미숙함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깊이 들여다보겠다”고 고개 숙였다. 매니지먼트사는 “좋지 못한 사건으로 실망감을 안겨드려 죄송하다”며 처분 결과와 상관없이 대회 출전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겠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뒤늦은 사과와 반성은 훗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명예의 전당에 오르겠다는 윤이나의 다부진 목표마저 퇴색시킨 채 짙은 주홍글씨로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