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의 전 회장이 골프에서 가장 유서 깊은 메이저의 적절한 명칭을 옹호한다. 글_이언 패틴슨(Ian Pattinson)
미국인 친구들 ― “금메달 수상자이자 올해의 챔피언 골퍼는….”
매년 7월 클라레 저그를 수여하기 직전, 새로운 오픈 챔피언을 소개하기 위해 R&A 회장이 사용하는 단어다. ‘디오픈’의 우승자는 그렇게 선포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많은 미국인이 느낄 감정에 대한 역사적이고도 논리적인 설명은 이상하고, 심지어 구식이고 독특하며, 어… 영국적인 의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제발 우리의 챔피언십을 ‘브리티시오픈’이라고 하거나 훨씬 더 나쁘게 ‘더브리티시’라고 부르지 마시길. 왜냐하면 이는 완전히 틀린 호칭이기 때문이다. 왜냐고? 처음부터 시작해보자.
첫째, 클라레 저그의 바깥쪽 경계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골프 챔피언 트로피’. 따라서 이 트로피를 받는 사람은 ‘챔피언 골퍼’로 발표된다.
둘째, 챔피언십의 첫 경기는 제1회 US오픈보다 35년 앞서고, 첫 PGA챔피언십보다 56년 전, 최초의 마스터스 토너먼트보다 74년 앞선 1860년에 개최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현재 사용되는 의미에서의 ‘메이저’라는 표현이 아직 없었기 때문에 1860년에는 원래 ‘챌린지 벨트’를 향한 경쟁이 주변의 유일한 챔피언십이었으며, 단순히 ‘챔피언십’으로 알려졌다. 이듬해 주최 측은 이 대회가 ‘세계에 오픈’되어야 한다고 선언했지만, 1872년(3연속 우승을 기록한 영 톰 모리스에게 수여된 벨트를 클라레 저그로 대체)에야 비로소 로열&에인션트는 처음으로 ‘디오픈챔피언십’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브리티시오픈이라는 표현은 역사적·지리적·정치적으로 옳지 않다. 알다시피 ‘브리티시’라는 말은 단지 ‘대영제국과 관련된’을 의미하지만, 대영제국은 유럽 본토의 북서쪽 해안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북대서양 위의 작은 섬(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포함)을 위해 우리가 만든 위대한 이름이다.
북아일랜드(두 번의 디오픈을 유치했고, 2025년 또다시 디오픈 개최가 예정되어 있다)는 아일랜드섬의 일부이자 영연방의 일부이지만, 실제로 대영제국의 일부는 아니다. 우리의 챔피언십을 브리티시오픈이라고 부르는 것은 북아일랜드의 공헌을 무심코 지워버리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UK오픈’이라고 부르려는 유혹은 받지 마라! 비슷한 사례로 알래스카나 하와이가 미국의 일부가 아니라는 암시에 대해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이는 예의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이 아무리 미묘하게 보일지라도 영국과 북아일랜드의 골프 팬들은 왜 일부 미국인이 디오픈을 브리티시오픈이라고 하거나, 심지어 더브리티시라고 잘못된 이름을 고수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여전히 의아해하고 있다. 클라레 저그의 소유주(세인트앤드루스의 로열 & 에인션트골프클럽)도, R&A(현재 이 대회를 운영하고 있다)도 이 대회를 둘 중 어떤 이름으로도 부른 적이 없다.
이것을 생각해보자. 진정한 골프 팬이라면 ‘아메리칸오픈’이라거나 ‘US마스터스’(더 나아가 ‘마스터스챔피언십’) 혹은 ‘아메리칸PGA챔피언십’이라고 부르는 것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위대한 메이저 대회는 각각의 대회를 적절하게 알릴 수 있도록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뚜렷하게 구분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왜 이들 중 가장 오래된 메이저에는 같은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가?
애초부터 돋보이던 대회 장소인 프레스트윅골프클럽은 열두 번의 대회를 유치했지만, 오픈 대회로서 스타일을 갖추고 훌륭한 출발을 보인 것은 1919년이다. 당시 챔피언십 개최에 연루된 클럽 협회 회의에서 ‘로열 & 에인션트골프클럽은 챔피언십 운영과 챌린지 컵 보관을 수락할 것을 요청받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1920년 3월 새롭게 구성된 R&A챔피언십위원회는 ‘챔피언십 챌린지 트로피를 위한 경쟁’ 조건을 설계하기 위해 모임을 가졌고, 이날 회의록의 또 다른 부분에는 ‘더챔피언십’과 ‘디오픈챔피언십’이라는 명칭이 기록됐다.
R&A골프클럽 지도자들의 마음속에는 현재 이들이 주관하고 있는 대회가 디오픈챔피언십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고려된 적도, 언급된 적도 없는 브리티시오픈이 아니며 앞으로도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1927년 공식 프로그램은 이 대회를 ‘오픈골프챔피언십’으로 명명했다. 1933년 대회명은 디오픈챔피언십이었고, 1946년 챔피언십이 끝난 후 배포된 소책자에는 ‘오픈 리플렉션’이라는 제목이 달렸다(흥미롭게도 미국에서 온 10명을 포함해 총 28명의 외국인 참가자가 있었으며, 그중 한 사람이던 샘 스니드는 유일한 출전으로 올드 코스를 압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출전 선수는 보다 더 국제적으로 바뀌었고, 어쩌면 이것이 미국인들로 하여금 브리티시라는 단어를 사용해 자신들의 대회와 차별화하려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물론 그 누구도 위대한 선수들의 전당에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1960년 초부터 오픈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 아널드 파머만큼 노력한 사람은 없었다.
이 대회에 출전한 4명의 미국 선수 중 한 사람이던 그는 100주년을 맞이한 대회에서 센테니얼오픈챔피언이 된 호주의 켈 네이글에 무릎을 꿇어 2위에 그쳤지만, 이후 두 번의 디오픈에서 우승을 기록했다. 이는 국제적 포부를 지닌 다른 미국 프로 선수들로 하여금 디오픈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디오픈의 위상을 더욱 높이고 굳혔으며 오늘날처럼 비미국인 선수들이 US오픈 출전 기회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던 시기에 이 대회를 더 ‘오픈’시켰다. 2000년까지 40년 동안 US오픈 우승자 명단보다 디오픈 우승자 명단에 포함된 국가가 2배 이상 많다. 선수 분포에 있어 미국의 저력을 감안하더라도 이 수치는 괄목할 만하다.
미국에서 처음 중계된 1966년 디오픈 당시 R&A골프클럽은 마크 매코맥에게 10년 이내에 일본을 포함한 TV 중계권 협상을 요청했다. 그는 오픈챔피언십의 이름을 등록하는 것의 상업적 잠재력을 이해하고, 일부 제한된 해외시장을 위해 처음으로 브리티시오픈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세계적 상표 에이전시와 협상했다.
그러나 그 이름이 해외 TV에는 적합하지만 영국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역대 챔피언 위원회들은 일부 위대한 미국인 우승자들이 그렇지 않았을 때도 오리지널 브랜드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데 단호한 태도를 견지했다. 대조적으로 영국과 북아일랜드 골퍼들은 자신들의 챔피언십을 항상 디오픈이라고 정확하게 불렀다.
프린트된 기념품 프로그램 표지의 이름이 수년에 걸쳐 변경된 것은 사실이다. 1995년 ‘디오픈골프챔피언십’에서 ‘디오픈챔피언십’으로 변경되었다가 2003년 ‘디오픈’에 정착했다. 그러나 최근 콜린 모리카와(2021), 캐머런 스미스(2022)를 포함한 챔피언 골퍼들의 잘못된 호칭 사용으로 인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로열&에인션트골프클럽이나 그 후임 조직위원회인 R&A 관련 회의에서 챔피언십을 설명할 때 브리티시라는 형용사가 등장하는 경우는 단 1분도 없다.
그러니 미국인들이여, 우리는 당신들의 세 메이저 대회를 언제나 적절하고 정중하게 명명할 것이다. 그 대가로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은 우리의 오픈인 디오픈에 동등한 대우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때 당신네 나라를 침략했을지 모르지만, 당신들은 결국 우리를 격퇴했고 이는 옳은 일이었다. 우리는 이제 이 지역적 문제를 모두 극복한 것 아니겠는가? 다만 우리가 골프를 발명했고, 이를 당신들과 함께 나누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이것은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