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우의 골프역사]중세 시대에 내려진 골프 금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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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우의 골프역사]중세 시대에 내려진 골프 금지령
  • 인혜정 기자
  • 승인 2024.12.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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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he Sabbath Breakers’, (1896) J. C. 돌먼(J. C. Dollman)의 작품. Luffness New Golf Club 제공. 

중세 시대에 골프는 전 연령이 즐기던 국민 스포츠였다. 1471년 주일 골프 제한, 골프 금지령이 내려지며 골프는 왕가에서만 즐기는 귀족 스포츠로 변모했다. 

R&A에 따르면 세계 251개국 중 골프장을 보유한 국가는 206개에 이른다. 골프 인구는 666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UN 회원국이 193개국, 세계올림픽위원회(IOC) 회원국이 206개국, 세계축구연맹(FIFA) 회원국이 211개국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골프가 얼마나 인기가 높은 세계적 스포츠인지 알 수 있다. 

대부분의 현대 스포츠가 고대의 생존과 전쟁에 관련된 도구나 기구, 기술 그리고 놀이 형태의 것들이 시대를 거듭하며 순화되고 정형화되어 오늘날의 스포츠가 된 것처럼 골프도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

오늘날 우리가 즐기고 있는 현대의 골프 경기는 스코틀랜드에서 기원해 이 지역을 중심으로 꾸준히 발전을 거듭했고, 다시 잉글랜드를 거쳐 세계로 전해졌다. 그러나 골프가 하루아침에 스코틀랜드에서 발생해 지금에 이른 것은 아니었다. 수 세기 동안 인간은 스틱과 공을 가지고 노는 많은 놀이와 게임을 즐겨왔다. 이렇게 스틱과 공을 이용한 놀이 문화는 인류의 각 시대와 대륙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즐기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골프 경기와 유사해 골프의 기원으로 불리는 놀이나 게임은 로마 카이사르(BC 100~BC 44)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다. 스코틀랜드성을 정복한 로마 군인들이 야영지에서 구부러진 막대기로 깃털로 만든 단단한 공을 치던 ‘필라 파가니카(Pila Paganica)’, 그리고 네덜란드의 ‘콜벤(Kolven)’, 벨기에의 ‘숄레(Chole)’, 프랑스의 ‘주 드 마유(Jue De Maille)’가 골프의 발생에 영향을 줬다고 하지만, 이 게임들은 모두 골프 경기 고유의 핵심 요소인 홀이 빠져 있었다.

동양에서도 골프와 유사한 놀이와 게임이 행해졌다. 일본 나라 시대(710~-794)의 ‘타구(打毬)’, 중국 명나라(1368~1644) 때의 ‘추환(丸)’ 그리고 한국 조선 시대의 ‘격방(擊棒)’ 등이다. 이렇게 스틱과 공을 이용한 놀이와 게임이 세계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골프는 스코틀랜드에서 탄생했다는 점에는 모두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 스틱 놀이나 게임이 어떻게 스코틀랜드의 골프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아직도 풀어야 할 과제다.

사진=스코틀랜드 의회법, 1457년 3월 6일, 스코틀랜드 국립기록
보관소 제공. 

골프에 대한 최초 문헌은 1457년 3월 6일 스코틀랜드의 왕이었던 제임스 2세(1430~1460)가 축구와 골프를 금지한다는 기록이 발견되면서 중세 시대 골프의 실체가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왕권을 차지하기 위한 내전과 주변 왕국들 간의 전쟁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었다.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백년전쟁(1337~1453), 잉글랜드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장미전쟁(1455~1487), 그리고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전쟁이 지속되고 있었는데 국민들이 궁술 대신 골프와 축구를 선호했기 때문에 골프를 금지시켰다. 그 이후에도 스코틀랜드의 주변 정세가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골프의 인기가 지속되다 보니 1471년과 1491년에도 같은 이유에서 ‘골프 금지령’이 내려졌다.

주일에도 골프 활동을 제한하기도 했다. 1604년 소년들이 주일에 교회에 가지 않고 골프를 했다는 이유로 벌금을 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일반적으로 골프가 귀족 스포츠라는 사회적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지만, 중세 시대에는 이렇게 국민적으로 전 연령대에 걸쳐 인기를 끌던 게임이었다는 사실을 이 금지령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언제부터 골프가 귀족 스포츠로 자리 잡아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코틀랜드 왕들이 골프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귀족과 평민 모두의 사랑을 받는 게임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4세도 1491년 골프를 금지시켰지만, 1502년 9월 골프 클럽을 구매하고 이듬해 2월에는 골프 비용을 지불했다는 왕실 기록이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골프가 이때부터 왕가의 게임이 되어 귀족들까지 참여하는 게임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진=<The Perth Kirk Session Books> 의사록 책자, 제임스 스콧 대주교(Rev. James Scott)의 1604년 필사본, 스코틀랜드 국립도서관 참고 문헌: Adv.MS.31.1.1.

스코틀랜드 왕가의 대를 이은 제임스 5세(1512~1542)와 메리 스튜어트 여왕도 골프를 즐겼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국민 스포츠였던 골프는 금지 스포츠가 되었다가 다시 국왕이 즐기던 왕가의 게임으로 이어지며 주변 귀족까지 참여하는 귀족 스포츠로 발전하게 된다.

골프가 스코틀랜드에서 귀족 스포츠로 변모한 데는 제임스 4세의 역할이 컸다. 그는 1502년 잉글랜드와 평화협정을 맺고, 1503년에는 잉글랜드 공주와 결혼함으로써 두 왕국은 평화를 찾게 되어 스코틀랜드에서 더 이상 골프를 금지할 명분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골프는 스코틀랜드에서 더욱 발전해나갔고, 그 후에는 잉글랜드에까지 전해지며 귀족 스포츠로 자리 잡게 되었다. 

잉글랜드 여왕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가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가 없이 죽자 그녀의 종손이었던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가 후계자가 되어 통일된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가 되었다. 그는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 1603년 스코틀랜드에서 신하와 귀족들과 함께 런던으로 갔다. 이때 제임스 1세는 스코틀랜드에서 자신의 골프 클럽을 가지고 왔다. 왕이 된 후에는 에든버러의 활 만드는 장인을 왕실의 클럽 제작자로 임명하며 골프를 왕가의 게임으로 만들었다.

1608년 잉글랜드에도 골프 코스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골프가 궁정 사회에 자리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궁에 출입하던 귀족들이 골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며 해상무역과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평민들이 귀족들과 교류하며 문명화 과정을 통해 귀족 스포츠로 자리 잡게 되었다. 

 

글=조상우(호서대 골프산업학과 전공 교수이며, 한국 골프사 연구와 함께 골프 골동품을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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