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가 뭔지도 모르면서 골프 선수가 되겠다고 했죠. 10년 전이네요. 늦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지난 12일에 막을 내린 아람코 팀시리즈 코리아에는 국가대표를 제외하고 한국 선수 3명이 출전했다. 우승한 김효주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날아와 화제를 모은 김조은, 그리고 박도연. 2라운드가 우천 중단되기 전까지만 해도 55위로 컷 통과 가시권에 들었으나, 잔여 라운드에서 아쉬움을 남기며 결국 최종 라운드에 나서지 못했다.
그래도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이렇게 큰 무대에 나섰다. 경험을 쌓았다고 보기에는 충분한 대회 규모. 그리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진출을 꿈꾸는 박도연에게 큰 자산이 됐다.
박도연은 “한국에서 하는 대회가 있다고 해서 스폰서인 회사에 모두 편지를 썼다. 근데 그 편지 덕분에 이렇게 초청 받았다”면서 “올해 여름쯤 LPGA투어 Q스쿨에 가려고 한다. 큰 대회에 나가보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서 편지를 썼다”고 전했다.
기록이 없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프로 테스트에는 합격했으나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10대 아마추어 때도 어디 출전해 입상한 적도 없다.
골프채를 처음으로 잡은 게 고등학교 1학년 때다. 동년배는 대회에 숱하게 출전하며 국가대표에 들어갈 때, 그제야 골프를 배웠다.
박도연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할 때였는데, 선수들이 훈련하는 과정을 찍은 다큐멘터리를 봤다. 그걸 보면서 ‘운동선수 너무 멋있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같은 학교에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가 유니폼을 입고 왔다. 내가 다큐멘터리에서 본 선수들과 같은 유니폼이더라. 그걸 보고 있으니 나도 너무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다”고 떠올렸다.
운동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라고 생각했지만, 하고 싶다는 열정이 불타올랐다. 이를 들은 부모님은 늦게라도 시작할 수 있는 스포츠를 찾아봤고, 야외에서 할 수 있는 스포츠 중 유일하게 골프가 눈에 들어왔다.
입시가 중요한 한국 10대에게 고등학생 시절은 정말 중요하다. 공부를 더 하겠다고, 학원을 더 보내달라고 해도 모자를 상황에 갑자기 딸이 ‘운동선수를 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겨울방학에 이미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선행학습 해놓은 상태였다. 이후에도 영어 캠프, 학원 등 엄청 많이 보내주셨는데 갑자기 공부를 안 하고 운동선수를 한다고 하니까. 하지만 아빠가 허락해 주셨다.”
늦게 시작한 만큼 더 열심히 했다. 그래도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박도연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밌었다. 2학년 때부터 대회에 나갔는데, 그때 내 또래들은 다 언더파를 치니까 나는 언제나 컷 탈락이었다. 그래도 2019년에 프로 턴을 하고 이후에는 LPGA투어 Q스쿨을 봤다. 호주 투어도 뛰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경제적인 벽에도 부딪혔다. 스폰서 없는 선수가 매주 대회를 다니고, 해외 투어도 뛰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하다. 현실에 순응하며 레슨에 나섰다. 투어 프로의 꿈은 잠시 접었다. 어쩌면 선수 생활을 그만두려고 했지만, 우연히 본 TV가 박도연을 움직였다.
“레슨 끝나고 잠깐 쉬는 시간이 생겨서 TV를 봤는데 US여자오픈이 나왔다. 그때 우승한 선수가 2021년에 나와 LPGA투어 Q스쿨을 같이 본 선수였다. 앨리슨 코푸즈. 그 사이에 코푸즈는 정말 많이 성장한 것 아닌가. 그 선수를 보며 느꼈다.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게 올라왔다. ‘나도 다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다시 필드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부랴부랴 준비했다”고 회상했다.
다른 또래 선수보다 늦게 시작해 경험은 적지만, 열심히 한다면 그만큼 롱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 그러기 위해 매일 구슬땀을 흘린다.
박도연은 “나는 되게 끈질기다. 이 무명 시간이 얼마나 길지 모르겠지만 꼭 LPGA투어 진출에 성공할 거다. 절대 포기하지 않을 테니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다짐했다.
[사진=아람코 팀시리즈 코리아 조직위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