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골프 시장은 더 멀리 더 똑바로 보내기 위한 드라이버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변하지 않는 슬로건의 핵심 과제는 드라이버 헤드 소재와 디자인이다. 1990년대부터 과열된 소재 경쟁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용품 업계 반응은 하나였다. “카본, 티타늄 이후 또 다른 소재는 더 이상 없다.”
드라이버 헤드 소재로 퍼시먼(감나무)을 깎아 만든 우드(나무)를 사용하던 시대의 종식을 알린 건 1979년 메탈 헤드의 개발이었다. 테일러메이드의 창시자인 게리 애덤스에 의해 탄생한 로프트 12도의 스테인리스 스틸 드라이버 ‘피츠버그 퍼시먼’은 2년 뒤 이 드라이버를 들고 나선 론 스트렉이 휴스턴오픈(1981년)에서 우승을 차지해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탈 드라이버’ 시대를 열었다. 이후 미즈노에서 1982년 카본 헤드, 1990년 티타늄 헤드를 최초로 선보이고 캘러웨이골프가 첨단 소재 경쟁에 합류하며 드라이버 소재 시장은 엄청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 소재 전쟁의 서막 : 비거리 & 내구성
드라이버 소재의 변천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강도와 내구성의 발전사다. 과거 드라이버 소재도 마찬가지였다. 헤드 틀을 나무로 만든 뒤 골퍼의 클럽 스피드에 따라 헤드 페이스와 솔에 강도가 다른 철판을 덧대는 형태였다. 메탈 헤드로 바뀐 뒤에는 스틸 가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소재의 다양화에 대한 이슈가 떠올랐다. 비거리 향상을 위해 강성이 높은 리퀴드 메탈, 올리마 트라이메탈, 두랄루민 등 다양한 소재를 적용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살아남지 못하고 실패했다.
문제는 내구성이었다. 강한 스윙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강성이 높기만 한 소재는 헤드가 터지거나 깨지는 현상이 나타나 골칫거리였다. 또 헤드의 내구성을 강화하면 쉽게 헤드에서 떨어져 나갔다.
드라이버의 궁극적인 목표인 비거리 향상과 내구성의 한계를 넘기 위한 소재의 해답이 금속산화물인 티타늄이었다. 강철만큼 강하지만 밀도는 강철의 절반인 티타늄은 가볍고 강한 소재였다. 티타늄은 알파 티타늄, 베타 티타늄, 알파-베타 티타늄 형태의 헤드 소재로 쓰이기 시작했다. 초창기 헤드 소재로 쓰인 6-4 티타늄(알루미늄 6%-바나듐 4%-티타늄 90%)에서 딱딱하고 강한 15-3-3-3(바나듐 15%-크롬 3%-알루미늄 3%-주석 3%) 베타 티타늄으로 발전하는 등 다양한 티타늄 합금 소재를 헤드에 적용했다. 이후 카본이 등장했으나 티타늄보다 가벼운 대신 강도가 약해 다시 티타늄 소재가 각광을 받았다.
현재도 많은 브랜드가 티타늄 소재를 채용하는데 클럽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티타늄의 순도다. 고가의 티타늄 원천 소재로 알려진 베타 티타늄의 비율이 많을수록 내구성이 올라가고 반발력도 높아진다. 미즈노는 ST200 드라이버에 베타 티타늄 비율이 높은 베타 리치 티타늄을 사용했고, 핑골프는 G410 드라이버에 T9S 티타늄, 테일러메이드는 SIM 드라이버에 6-4 티타늄, 캘러웨이는 매버릭 드라이버에 FS2S 티타늄을 적용한 페이스를 장착했다. 결국 용품 업계는 더 얇고 강한 페이스를 만들기 위한 티타늄 합금과 더 가벼운 복합 탄소 소재인 카본을 사용해 가장 완벽한 조합을 찾는 데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 디자인 & 테크놀로지 : 밸런스를 잡아라
드라이버 소재 전쟁을 벌이던 용품 업계는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헤드에 무조건 가볍고 강한 소재를 적용한다고 이상적인 헤드를 구현해내지 못했다. 헤드의 보디와 페이스 강도의 밸런스가 맞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소재를 써도 깨지거나 터지고 투자 대비 효과를 보지 못했다. 티타늄과 카본의 단순한 조합만으로는 눈높이가 높아진 골퍼의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소재의 한계는 결국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결합한 헤드 구조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골프 전문 브랜드조차 소재를 특화한 전문업체를 통하지 않으면 새로운 소재 개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소재에서 차별성을 찾기 어려워지자 검증된 티타늄 소재를 활용하면서 헤드의 완벽한 밸런스를 이룰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소재 경쟁을 벌일 때부터 시작된 구조적 변화는 단순했다. 지금은 460cc의 헤드 크기가 대세지만 과거에는 300cc로 늘린 것이 획기적이던 시대도 있었고 한때 헤드의 형태를 바꿔 반원형이 아닌 사각형 헤드까지 고안하기도 했다. 또 헤드의 위, 아래, 옆, 페이스 등 4피스 제작 방식으로 4면을 붙이다가 밸런스를 맞추기 어려워지자 컵 페이스 방식으로 공정을 바꿔 보디를 만든 뒤 페이스만 붙이는 2피스 제작으로 내구성을 높이기도 했다.
용품 업계는 디자인에 테크놀로지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기술적 완성도를 위한 것도 있었지만 마케팅적 요인도 있었다. 카본 소재로 크라운을 가볍게 만들어 저중심 설계로 방향을 틀었고, 기술력을 총동원해 앞다퉈 무게중심을 더 낮게 뒤로 빼는 무게 재분배를 외쳤다. SIM 드라이버가 공기저항을 줄인 기하학적인 디자인을 선보인 것도 소재의 한계를 넘기 위한 신선한 변화다.
골퍼의 트렌드도 바뀌면서 용품 회사의 마케팅 전략도 달라졌다. 헤드 자체의 외형적 디자인과 타구감, 타구음 등 골퍼의 감성 트렌드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고 최근 수년간은 샤프트에 집중해 대부분 메이저 브랜드에서도 애프터 마켓 샤프트를 도입하는 추세다. 캘러웨이골프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탑재한 에픽에 이어 매버릭 드라이버를 내놓기도 했다. 이 같은 드라이버 트렌드의 변화는 소재 전쟁의 종결을 알리는 울림이다.
▲ 미국 vs. 아시아(feat. 일본) 드라이버 시장은 트렌드가 다르다?
드라이버 시장의 마케팅 전략에는 골퍼의 성향 차이도 숨어 있어 흥미롭다. 미국 골퍼는 데이터베이스에 중점을 두고 아시아(일본) 골퍼는 결정적 한 방을 노린다는 분석이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은 10개 중 몇 개가 똑바로 나가느냐, 아시아는 제대로 맞았을 때 얼마나 잘 나가느냐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또 미국 드라이버는 투박하게 제작하고 아시아 드라이버는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으로 만든다. 미국 골퍼는 타구감이나 타구음에 관심이 없는 편인 반면 아시아 골퍼는 타구감과 타구음에 매우 예민하다.
스윙 스타일이 영향을 끼친다는 해석도 있다. 미국은 강한 페이스 소재를 사용해 세게 때릴 수 있게 제작하고 아시아는 스프링 페이스와 같은 부드러운 소재로 공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게 만든다. 반발계수(COR) 대신 CT(characteristic Time)에 주목한 결과다. 반발계수는 클럽의 운동에너지를 임팩트 때 공에 전달하는 비율을 수치로 나타낸 것이라면 CT는 임팩트 순간 공이 페이스 면에 붙어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페이스 면에 공이 붙어 있는 시간이 길수록 반발력이 커진다.
[서민교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min@golfdigest.co.kr]
[사진=조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