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도전은 긍정적으로! 실패를 잊은 ‘혜준적 사고’ [스페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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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도전은 긍정적으로! 실패를 잊은 ‘혜준적 사고’ [스페셜 인터뷰]
  • 한이정 기자
  • 승인 2024.08.30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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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을 좋아해서 시작한 골프. 잠시 시련은 있었지만, 두 번의 실패는 없다. 1년 만의 정규투어 재입성. 아니, 생각보다 전반기까지 잘 풀리다니! 이거 완전 ‘러키비키’잖아? 

 

최근 젊은 세대를 강타한 신조어가 있다. 어떤 일이든 긍정적 결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확신의 ‘원영적 사고’. 아이돌 가수 장원영의 초긍정적 사고방식이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고, 그의 영어 이름인 비키(Vicky)를 붙여 ‘러키비키’라고도 한다.

원영적 사고를 능가할 ‘혜준적 사고’가 등장했다. 샷이 안 될 때 화가 나면 어떻게 해소하냐는 질문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떠 보인 박혜준은 “그런 상황에서는 화가 잘 안 난다. ‘어차피 되돌리지 못하는데 짜증 내면 너만 손해다’라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 나니 그냥 계속 웃게 된다”고 말했다.

근심이나 걱정, 화나는 일도 금세 잊어버려 가끔은 억울하다는 박혜준에게 사람들은 “항상 그렇게 웃고만 다니니 독기가 없는 거다”고 한단다. 그는 대꾸한다. “마음속에 독기가 없는데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나는 그저 행복하고 즐겁게 골프를 하고 싶은 것뿐이다.”

 

■ 1년 만에 돌아온 정규투어 두 번째 시즌. 벌써 전반이 끝났다. 되돌아보면 어떤가? 국내 개막전(두산건설We’ve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하고 나니 아무래도 시드 걱정은 사라졌다. 그래서 더 편안하게 플레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6월부터 부상이 늘어나면서 성적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 점이 아쉬워서 보강하기 위해 운동량을 늘렸다.

■ 지난해 드림투어에서 뛰던 삶과 비교하면 두 번째 정규투어는 어땠나? 사실 드림투어에서 뛸 때는 스트레스도 풀 겸 많이 놀러 다녔다. 이틀짜리 대회이기도 하니 친구도 자주 만났고, 국내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런데 정규투어는 그럴 시간이 아예 없다. 컷 탈락해서 주말이 생긴다고 해도 사실 쉬는 게 아니다. 다들 짜증이 나니 연습장부터 간다.

■ 처음 정규투어에 입성했던 2022년, 상금 순위 71위로 아쉽게 시드를 놓쳤다. 다시 드림투어로 돌아간 심경은 어땠나? 내가 인생을 얼마 살지 않았지만, 내 인생의 첫 번째 실패였다.(웃음) 그렇게까지 힘들 줄 몰랐는데, 잠도 잘 못 자고 한동안 엄청 힘들었다. 나한테 실망을 많이 했다. 그런 나를 보는 부모님도 마음이 안 좋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 부모님께 좋은 얘기도 많이 듣고, 놀러 다니기도 하고, 생각을 바꿔가면서 괜찮아졌다.

■ 부모님은 어떤 말씀을 많이 해주셨나?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나 골프를 시작할 때도 성적 같은 것보다 내 행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어릴 때 부모님이 “골프하다가 재미없으면 그만하라”고 하셨다. 작년에도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딸 입장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위안은 되지만, 한편으로는 하기 싫어도 그만두지 못하겠더라. 그래서 또 골프채를 잡았다.

■ 아버지 영향으로 골프를 접했다고 들었다. 피지로 유학까지 갔다고 들었는데, 어린 시절 해외로 떠난 이유는 무엇인가? 외국이 더 골프하기 좋은 환경이라 생각하신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 부모님이 “외국에 가서 골프 해볼래?” 하셨다. 그 나이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외국? 비행기? 좋네!” 하고 무작정 쫓아 나섰다. 근데 그게 그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피지에는 잠시 있었고, 호주에 갔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돌아왔다. 6년간 있었다.

■ 피지에서 호주로 터를 옮긴 이유가 있을까? 피지는 주니어 선수가 거의 없어 당시 한국에서 함께 갔던 친구들 서너 명과 늘 같이 연습했다. 주니어 선수가 나갈 대회도 많지 않아서 아버지의 권유로 호주에 갔다. 호주가 한국에서 좀 더 가깝고, 피지와 환경도 비슷한 데다 잘하는 선수도 많았다.

■ 해외에서 골프를 배운다니, 어린 나이에 골프 압박에 언어 장벽까지 부딪혀야 할 게 많았을 것 같다. 어릴 때는 ‘난 여기 골프하러 온 거야’라고 생각했다. 내게 1순위는 골프다! 그러나 영어를 못하니까 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다. 학교에 가야 비자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학원부터 갔다. 거기서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영어 공부를 하고, 이후에 골프 연습을 했다.

■ 한국에 있는 또래 선수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골프만 했을 텐데, 불안하거나 힘들다는 느낌은 없었을까? 너무 재밌었다. 영어를 배우는 것도 즐거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버지와 함께 9홀 플레이를 한 뒤 학교에 갔다가 수업이 끝나면 골프장에 가서 연습하거나 라운드하고 집에 와서 가족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내 일상이었다. 매일 하던 일이고 특별한 것도 없었으나 그 자체가 내겐 너무 행복한 기억이다.

■ 골프를 시작했던 때를 떠올려보자. 그때도 행복했나? 맞다. 아버지가 골프를 워낙 좋아하셔서 나는 어릴 때부터 골프에 노출돼 있었다. 보행기 위에서 장난감 골프채를 잡고 있는 사진도 있고, 어릴 때 갤러리를 다니며 찍은 사진도 있다. 부모님은 내게 골프하라고 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주산이나 한자 같은 공부, 미술,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 우쿨렐레 등 골프를 제외하고 가르쳐주신 게 더 많다. 부모님은 오히려 골프의 ‘골’ 자도 안 꺼내셨다. 근데 초등학교 1학년 때 내가 엄마에게 편지를 썼단다. “나 골프 하고 싶어. 골프 시켜주면 안 될까?” 그때부터 집 앞에 있는 연습장에서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박혜준의 경기 모습. 사진=KLPGA 제공.
박혜준의 경기 모습. 사진=KLPGA 제공.

■ 그 어린 나이에 골프가 왜 재밌었을까? 이것저것 많이 배웠다면 더 재밌는 것도 분명 있었을 텐데. 어릴 때 일기장을 찾아봤다. 초등학교 2~3학년 때쯤 썼던 일기였다. 당시에 <스타킹>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너무 좋아했는데, 아빠가 골프장에 가자고 했나 보다. 내가 일기에 “TV 보는 게 더 좋지만 골프도 하고 싶다”면서 결국 아빠를 따라나섰다고 썼더라. 그걸 보면서 ‘내가 이런 마음으로 어릴 때 골프했구나’ 싶었다.

■ 결과적으로 어릴 적 아버지와 갤러리를 다니며 본 골프 선수의 모습에 푹 빠져 골프를 배우게 된 셈이다. 어린 박혜준의 기억에 남는 갤러리 추억이 있을까? 너무 어릴 때이긴 하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도 있다. 한번은 아버지와 미셸 위 선수를 쫓아다니다 아버지가 어떤 분께 인사를 했는데, 미셸 위 선수의 아버지였다. 그래서 미셸 위 선수에게 사인받은 기억도 있고, 신지애 선수는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셨는데 그 강아지를 보기 위해 또 쫓아다니기도 했다.

■ 초등학교 1학년 때 골프를 배우고 피지, 호주 등 해외에서 공부했다. 주니어 시절을 생각하면 힘들거나 아쉬웠을 때는 없었나? 나쁜 기억은 빨리 잊는다. 기억이 안 난다.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서 그냥 지워져 가끔은 억울할 때가 있다. 그래서 안 좋았던 기억이 없다. 너무 좋은 성격인 것 같다.

■ 그렇다면 호주에서 LPGA투어에 도전하지 않고 국내로 들어온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19 때문이었다. 호주는 그나마 안전했는데, 미국은 엄청 심해서 갈 수 없었다. 우선 안정될 때까지는 기다려야겠다 싶었는데, KLPGA투어는 만 18세가 되면 프로 자격을 딸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KLPGA투어에 도전했다. 6년이나 해외에서 살았더니 한국이 그립기도 했다.

■ 한국에 온 삶은 만족한가? 일단 내가 정규투어에 그렇게 빨리 갈 줄은 생각도 못 했다. 2020년 3월에 귀국했는데, 내 생일이 5월 2일이다. 마침 준회원 선발 예선전이 5월 3일인 거다! 우아! 그래서 그 대회부터 뛰어서 정회원이 됐고, 정규투어 시드까지 손에 넣었다. 시드전은 흔히 ‘지옥의 시드전’이라고 부를 정도로 힘들다.

■ 해외에서 경쟁한 경험도 그렇고, 잔디나 날씨 환경도 호주와 달라서 적응하기 어려웠을 텐데 성공(첫 시드전에서 3위 기록) 비결이 무엇일까? 나도 ‘지옥’이라는 말을 엄청나게 들어서 긴장하면서 갔다. 근데 막상 대회장에 도착하니 날씨도 너무 좋고, 별로 안 떨렸다. 처음이라 정보도 없고 경험도 없으니 오히려 그게 도움이 된 것 같다.

박혜준의 경기 모습. 사진=KLPGA 제공.
박혜준의 경기 모습. 사진=KLPGA 제공.

■ 시드전까지 밝고 재밌게 치를 정도로 긍정적인 박혜준에게 가장 힘들었던 때는? 작년이다. 어릴 때부터 해외에서 골프를 배우며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살아서 그런지 골프하는 게 행복하고 좋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정규투어에 들어오고 나니 순위에 집착하게 되고, 긍정적인 생각이 다 사라졌다. 게다가 정규투어는 경쟁이 워낙 심하지 않나. 내 인생에서 이렇게 잘하는 사람들과 대결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카메라가 붙고 갤러리가 걸어 다니는 것까지 다 적응하기 어려웠다.

■ 힘든 시간을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시드를 잃고 떠난 전지훈련에서 연습을 미친 듯이 했다. 먹고 자는 시간만 빼고 골프를 했다. 그렇게 열심히 하고 한국에 왔는데도 잘 안 됐다. 그때 깨달았다. ‘무식하게 해도 되지 않는구나. 내 스타일대로 해야 하는구나!’

■ 박혜준다운 골프는 무엇일까? 긍정적이고 밝은 나다운 골프! 평소에 책 읽는 걸 좋아한다. 정규투어에 다시 들어오면서 자기 계발서를 많이 읽고 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이런 구절을 봤다. “무의식에 있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예감은 맞고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 그 예감이 무의식에 있는 안 좋은 생각 때문일 수 있다.” 내가 이 책을 하이원리조트여자오픈 3라운드가 끝나고 읽었다. ‘그래, 무의식을 조정해서 긍정적으로 풀어보자’고 마음먹었는데, 노 보기 플레이를 했다. 나쁜 생각이 조금만 들려고 하면 ‘나 이거 무조건 넣을 수 있어. 나는 해낼 거야’ 하는 마음으로 임한다.

■ 박혜준이 올라가고 싶은 정상은 어딜까? 명예의 전당! 당연히 LPGA투어다. 그래도 한국에서 이름을 조금이라도 알린 뒤에 가고 싶다. LPGA투어를 상상하면 호주에 있을 때가 떠오른다. 호주와 비슷한 생활이겠지만, 좀 더 큰 무대이지 않을까? 3년 안에는 가고 싶다. 우선은 올해를 잘 마무리하고 싶다. 전반기에 내가 재작년에 안 좋았던 모습이 다시 나왔던 것 같다. 올 초에 보여드렸던 내 모습처럼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으로 후반기를 치르고 싶다.

■ 골프 외에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일까? 플루트를 다시 배우고 싶다. 이사를 해야 해서 짐을 정리하다가 플루트를 찾았다. 악보도 다 있더라. ‘나비야’를 불어봤는데 됐다! 나의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혜준 : 2003년 5월생 | 소속팀 한화큐셀골프단 | 프로 입회 2021년 8월 | 투어 데뷔 2022년 4월 | 주요 성적 2024 KLPGA 두산건설We′ve 챔피언십 준우승

사진_이종수(49비주얼스튜디오) / 헤어&메이크업_칼라빈 by 서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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