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년' 인터불고경산, 영남 자존심의 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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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년' 인터불고경산, 영남 자존심의 재건
  • 서민교 기자
  • 승인 2023.09.2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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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전통의 올바른 계승을 위해서는 의식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 10년의 풍파를 겪으며 쓰러져가던 이곳. 자연의 보존과 재건은 인간의 손길이 닿은 창조와 맞닿아 있다. 

신선한 충격은 기대 감정이 없는 방심의 순간에 찾아온다. 도심 속을 천천히 달리며 잘 정돈된 아파트 단지를 지나 유럽풍의 고급 타운하우스를 만나자마자 나타난 골프 코스. 불과 석 달 전 여행 삼아 방문했던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의 어바인에 자리 잡은 친근한 회원제 골프 클럽이 오버랩되는 건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처럼 무료하던 감정이 설레는 감성으로 바뀐 인터불고컨트리클럽의 첫인상은 이국적이면서도 도시적이었다. 뒤이어 스며드는 한국적 전통미는 잠시 빠졌던 착각에서 헤어나게 만든다. 

이곳은 경북 경산시 평산동이다. 인터불고는 화려하진 않지만 눈에 띄게 큼직한 골프장 입구 현판과 스페인풍 건축설계에 한국 전통 양식의 적갈색 기와로 차분하게 누른, 웅장한 클럽하우스가 단숨에 시선을 빼앗는다. 좀처럼 보기 드문 널찍한 주차 공간마저 여백의 미로 느껴진다. 인터불고(Inter Burgo)는 스페인어로 ‘화목한 작은 마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첫인상과 무척 와닿는 이름이다. 

2007년 개장한 인터불고는 대구·경북에서는 처음으로 27홀(파109) 전 홀을 회원제로 운영한 골프장이다. 국제 규모의 대회가 가능한 토너먼트 코스로 홀별 변별력도 뛰어나고, 난도도 높은 편이다. 접근성도 좋다. 경부고속도로 경산IC와 중앙고속도로 수성IC에서 10분, 대구 도심에서 20분, 경주에서 30분, 부산에서도 50분 이내 거리에 위치해 있다. 영남의 명문 코스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하드웨어를 갖춘 곳이다. 하지만 인터불고는 개장 이후 기대했던 청사진과 달리 부침을 겪었다. 과잉 투자로 인한 몸살을 앓고 적자 누적에 허덕이며 경영난에 시달렸다. 위기의 인터불고는 초과 분양 등 경영 부실 논란 속에 코스 관리는 당연히 엉망이었고, 회원들의 불만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직원들의 월급도 몇 개월간 밀릴 정도였다. 

전환점은 2017년 인터불고를 인수한 박춘영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한 이후부터다. 중장비 부품 및 볼트류 제조업으로 자수성가한 박 회장은 골프장 사업에 뛰어들었고, ‘고객을 위한 최고의 제품과 최고의 서비스를 추구’하는 그의 경영 철학은 인터불고를 기적처럼 되살렸다. 인터불고 개장 때부터 골프장을 지킨 최만수 대표는 이렇게 회고했다. “경영 자체가 어려운 골프장이었다. 제대로 된 코스 관리 장비도 없어서 오직 인력에만 의존했다. 박춘영 회장님이 인수하신 뒤 골프장에서 최우선으로 해야 할 잔디 품질 개선을 위해 정말 많은 투자를 했다. 고가의 장비를 구입하고, 배관 등 모든 시설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골프장은 서비스업이다. 그동안 지쳐 있던 직원들의 의식 개혁도 필요했다. 서로 힘을 합쳐 골프장 재건에 나섰다. 고객 만족 서비스를 위해 코스 관리는 물론, 음식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골프장이 달라지자 회원들의 만족도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최고를 추구하는 박 회장의 통 큰 투자와 최 대표의 세심한 노력은 인터불고를 적자 경영 구조에서 벗어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코스 관리 직원들의 불철주야 노력도 인터불고를 정상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성곤 코스 팀장은 “우리 직원들은 오픈 멤버부터 평균적으로 8~9년 정도 근무를 함께 해오면서 머릿속에 코스가 다 들어 있다. 아침 이슬이 서릴 때 코스에 나가면 가장 잘 알 수 있기 때문에 늘 점검을 하고 있다. 토양과 수질 분석을 통해 관리하기도 하지만, 이곳은 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뜨거워 잔디가 말라 타버린다. 직원들이 문제가 있는 곳을 미리 파악하고 소형 스프링클러를 적절히 설치해 관리해야 한다. 2019년부터 3부 운영을 하면서 답압 분산을 위해 투 그린을 조성하거나, 티잉 구역과 그린 출입구를 다양하게 조정하는 작업도 계속 진행 중이다”라고 강조했다.  

경북 최남단이자 대구 분지의 남동부에 위치한 경산은 북쪽으로 팔공산 자락이 뻗어내리고 있다. 남쪽은 청도군, 동북쪽은 영천시와 경계를 이루고 중앙부에 평야와 구릉지가 형성되어 있다. 금호강과 지류의 퇴적작용에 의해 형성된 평야는 토양이 비옥하고, 좋은 수리 시설을 갖추고 있다. 도심이 평탄하고 외곽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여서 여름철이 다른 곳보다 더 더울 수밖에 없는 지형 특징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일교차는 심한 편이고, 강수량과 적설량도 적다. 인터불고는 비슬산 끝자락과 백자산 기슭에 위치했다. 스카이·마운틴·밸리 3개 코스로 구성된 인터불고는 코스명의 의미 그대로 하늘과 산, 계곡을 모티브로 조성됐다. 

하늘과 맞닿은 스카이 코스는 첫 홀부터 경산 시내를 시원하게 바라보며 상쾌한 티 샷을 날릴 수 있다. 이곳의 시작을 알리는 홀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이번 방문에서는 마운틴-밸리 코스로 라운드하면서 스카이 코스는 눈으로 즐겼는데, 사실 3개 코스 모두 경산 시내 조망이 매우 뛰어난 홀이 곳곳에 조성되어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그중에서도 파3 3번홀은 스코틀랜드 링크스 스타일로 조성한 것이 인상적이다. 교목을 최대한 배제하고 홀 경계에 억새류를 심어 잔디와 어우러진 넓은 초원을 연상케 했다. 오른쪽 도그레그 홀인 파5 9번홀은 오른쪽에 노출된 바위 주위에 사군자(매난국죽)를 심어 옛 선비의 기개를 엿볼 수 있게 했는데, 이 홀에서는 공략 루트에 따라 장타자를 더욱 고귀하게 만들 수 있다. 스카이 코스의 또 다른 매력은 야간 골프다. 8번홀과 9번홀에서는 아름다운 야경을 만끽하며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다. 특히 6번홀과 7번홀 사이에 조성된 나무 숲길은 카트 레일과 천장에 달린 조명이 마치 반딧불처럼 반짝여 운치를 더한다.

인터불고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코스는 도전적인 마운틴이다. 기억성과 심미성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매력적인 코스다. 직선 코스인 파5 1번홀을 지나 2번홀 티잉 구역에 오르면 탁 트인 경산 시내와 영남대학교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인터불고에서 뷰 포인트는 계속되지만, 이곳이 으뜸이다. 다만 울창한 참나무 숲을 넘겨야 하는 티 샷에 이어 롱 아이언을 잡아야 하는 세컨드 샷은 부담스럽다. 3번홀과 4번홀은 청량한 폭포 덕분에 심미성이 뛰어나다. 파3 3번홀은 오른쪽으로 아담한 폭포와 연못이 있고, 그 너머로 다음 홀에서 펼쳐질 웅장한 폭포도 볼 수 있다. 파4 4번홀에서는 왼쪽 멀리 쏟아지는 폭포를 바라보며 티 샷을 한 뒤, 세컨드 샷 지점에 다다라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경산 시내가 펼쳐진다. 웅장한 장송에 둘러싸인 그린에서는 폭포 소리를 들으며 청량한 퍼팅이 가능하다. 벙커가 부담스러운 5번홀을 지나 만나는 6번홀은 왼쪽으로 휘어진 파4 도그레그 홀이다. 최근 골프 문화가 바뀌면서 인터불고는 스크린 골프에서 인기 코스로 통하는데, 바로 여기서 힘 좀 쓰는 골퍼들이 ‘원온’을 노리곤 한다. 하지만 실제 필드에서는 호기와 함께 드라이버를 내려놓는 것을 권한다. 

오른쪽으로 바위 절경을 따라 굽이치는 8번홀을 지나면 누구나 도전 정신이 번쩍 드는 시그너처 9번홀이 모습을 드러낸다. 인터불고를 대표하는 파6 홀로 백 티 기준 790m나 되는, 멀리 보이는 경산 시내만큼 기나긴 홀이다. 직선으로 곧게 뻗어 있지만, 왼쪽에는 계류가 흐르고 오른쪽에는 기존 수림대가 이어져 레귤러 온을 위해서는 오히려 힘을 빼는 데 집중해야 한다. 최만수 대표는 “지금까지 스리 온에 성공한 사람은 배상문 프로 외에 거의 본 적이 없다”고 귀띔했다. 

밸리 코스는 크고 작은 벙커와 연못, 아기자기하게 굽이치는 계류의 조화가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대형 연못을 넘겨 티 샷을 해야 하는 파4 1번홀부터 밸리 코스의 시작을 알린다. 파4 2번홀은 왼쪽에서 들리는 계류의 물소리가 청각을 자극하지만 피해야 하고, 파3 3번홀은 홀을 가로지르는 계류를 넘겨야 한다. 파4 5번홀은 티잉 구역에서 오른쪽으로 경산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만, 여기에 현혹되면 타수를 줄여야 할 홀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파3 6번홀은 홀 전반에 걸쳐 경산 시내 하늘 경관이 푸르게 펼쳐지고,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 군락지는 시간을 잊게 만드는 경치를 선사한다. 파5 9번홀은 대형 호수가 그린을 감싸고 있는 홀이다. 티잉 구역에 올라 내려다보면 스페인풍 클럽하우스와 호수, 푸른 잔디, 경산 시내 풍경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그림 같은 뷰가 펼쳐진다. 위험이 도사리는 무리한 투 온보다 전략적인 스리 온을 선택하면 이보다 완벽한 마무리는 없다. 

개장 이후 27홀을 유지했던 인터불고는 스카이, 마운틴, 밸리에 이어 추가로 9홀 증설을 준비 중이다. 최 대표는 “코스 디자인 전문 업체를 통해 설계 단계에 있기 때문에 2026년 봄 오픈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기존 27홀은 전장이 길고 도전적인 남성적 코스였기 때문에 새롭게 증설할 9홀은 여성 친화적 코스로 계획하고 있다. 최근 여성 골퍼가 2배 이상 증가한 점도 반영했다”고 말했다. 

최 대표가 강조하는 인터불고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클럽하우스 왼쪽으로 펼쳐진 야외 잔디 광장이다. 주말이면 이곳에서 야외 웨딩이 열린다. 연간 약 30회의 웨딩 마치가 울릴 정도로 인기다. 골프장을 골프를 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골프를 하지 않는 시민도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생각의 전환을 한 것이다. 스타트 광장 한가운데 위치한 처진 소나무(별명은 정이품 소나무)와 연습 그린 앞 진한 핑크빛 백일홍이 피어나는 배롱나무, 연습 그린 맞은편에 있는 450년 된 모과나무는 포토 존으로 각광받고 있다. 각종 연회 및 웨딩이 가능한 2만여 m2의 클럽하우스는 국내에서도 최대 규모로 손꼽힌다. 올 10월 클럽하우스 리모델링 착공 계획도 갖고 있다. 박유빈 경영지원 실장은 “고객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클럽하우스 내부를 전체적으로 리모델링하면서 노후한 시설에 집중적 투자를 할 계획”이라며 “우리 골프장은 연단체나 개별 팀이 많아 이분들이 선호하는 프라이빗한 공간을 더 확보할 계획이고, 스몰 웨딩이나 야외 웨딩의 인기가 많아져 신부 대기실 등 부대시설 리뉴얼을 통해 새롭게 단장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특별한 미식을 통한 즐거운 경험은 골프의 완성이다. 이를 위해 직영으로 운영하던 식당도 입찰을 통해 삼성웰스토리에서 아웃소싱을 맡았다. 삼성웰스토리에서 제공하는 계절별 다양한 음식 메뉴로 질과 맛을 높이는 동시에 회원들의 눈높이를 맞췄다. 박신영 삼성웰스토리 식음 점장은 “최대한 로컬 식재료를 사용해 계절별로 다양한 메뉴를 준비하고 있다. 봄에는 청도 미나리 등 무침류로 프레시한 음식을 제공하고, 여름에는 직접 육수를 만든 냉면과 냉채 족발, 기력 충전 오복탕, 황제불로탕 등 무더위 보양식을 준비하고 있다. 가을과 겨울에는 따뜻한 음식 위주로 제공하고 있는데, 이곳이 바닷가 인근에 접해 있지 않아 해산물 메뉴도 인기다”라고 말했다. 

사진_윤석우(49비주얼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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