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 우즈가 등장해 골프계의 지축을 흔들고 수많은 아이에게 골퍼의 꿈을 심어준 지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골프계는 여전히 백인 일색이다.
최고의 프로 무대에서 활동하는 흑인 선수는 한 손에 꼽을 정도이며, 엘리트 아마추어와 대학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몇몇 단체에서 평생 클럽 한 번 쥐어볼 일이 없을 아이들에게 골프를 소개하는 훌륭한 일을 하고 있지만, 언감생심 프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인맥을 쌓으며 일자리를 구하고 경력을 키우는 윤활유로서 골프를 활용할 실력과 열정을 갖출 수 있을 때까지 아이들이 골프를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측면에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타이거 우즈가 발휘한 영향력이 대단했다는 건 분명하다. 동서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우즈로 인해 골프를 하게 되었거나 골프라는 스포츠를 알게 된 사람들의 수는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다. 우즈가 골프 인구의 다양성을 확대하기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세간의 비판은 지나치게 단순한 시각이다. 그가 선택한 모든 행보가 합쳐진 결과 골프 역사상 가장 막강하고 짜릿한 독주 체제가 지속되었고, TGR 재단은 교육의 영역에서 그의 스타 파워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골프계의 여러 지도자들이 기회를 놓쳤다고 느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취약 계층이 이용할 수 있는 드라이빙레인지와 코스를 만드는 1m 남짓한 거리의 오르막 직선 퍼트는 아니더라도 모든 일을 추진하기에 우즈의 최전성기보다 더 나은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즈 다음으로 골프계와 우리 사회의 인구 구성을 더 흡사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인물은 미국프로농구(NBA)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의 포인트 가드 스테픈 커리다. 과연 그럴까?
충분히 그렇다.
프로 농구 선수로서 스테픈 커리가 대중에게 미치는 호소력은 프로 골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마지막 홀에서 이글에 성공하며 2023년 아메리칸센추리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그해 여름에는 핸디캡을 플러스 3까지 낮춘 커리는 어떤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유명 인사들 가운데 영향력 대비 단연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골퍼다. 그의 운동신경과 승부 경험을 감안한다면 나중에 PGA투어챔피언스에서 활동하겠다고 천명한 그의 포부는 결코 허황된 목표가 아니다.
“어떤 경로를 밟게 될지는 모르겠다.” 커리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건 농구 선수 생활을 마치면 일정한 범위 안에서 골프에 최대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실력을 높일 생각이며, 그렇게 14년이 흐를 경우 어떤 상황에 이르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라는 것뿐이다.”
커리는 본인은 물론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 여러 가지 꿈을 추진하고 있으며, 타이거 우즈는 결코 누려보지 못한 시대의 흐름도 그의 꿈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골프는 전반적 상승세를 탔는데, 도심의 드라이빙레인지와 스크린 골프 시설 같은 이른바 ‘오프 코스 골프’의 인기가 뜨겁다.
미국골프재단에 따르면 골프 코스에서 플레이를 하는 유색인종의 수는 2018년에 약간 감소했을 뿐 지난 10년 동안 100만 명이 증가한 반면, 코로나19 이후 새로 유입된 유색인종 오프 코스 골퍼의 수는 560만 명에 달한다. 실제로 실력을 발휘해보겠다는 동기부여가 가능한 잠재 인구가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커리는 <골프다이제스트> 화보 촬영을 위해 대규모 수행단과 함께 스프린터 밴을 타고 현장에 도착했다. 그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잡았을 때(스탠퍼드 대학교 골프 팀이 사용하는 시설이었기 때문에 그건 어렵지 않았다) 우리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기어스(GEARS) 생체역학 분석 시스템으로 커리의 스윙을 기록한 것이었다. 반응 센서를 몸의 정확한 위치에 부착하는 데는 몇 분이 걸렸고, 그러는 동안 188cm 키의 커리는 황송하게도 다리를 쩍 벌려서 평균 신장인 우리 작업 팀(동영상 촬영을 위해 그에게 마이크까지 채워야 했던)과 눈높이를 맞춰주었다.
슈퍼스타에게는 벌떼처럼 몰려든 사람들 사이에서 오직 자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어떤 특별한 인내심 같은 게 있는데, 커리는 그 인내심을 유난히 더 풍부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공손하면서도 느긋하게 “통계 숫자 놀이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어스 설립자 마이클 네프가 확인한 결과 커리의 스윙은 PGA투어 평균치와 몇 가지 사소한 차이밖에 없었다. “우리는 투어 선수 수백 명을 테스트했는데, 커리의 수치는 거의 대부분 비슷한 수준이었다. 정말 놀랍다.”
조던 스피스는 만약 그날 둘이서 친선 매치를 한다면 커리에게 6타를 접어주고, 까다로운 코스라면 아마 그보다 더 많을 수 있을 거라면서도 장기적 전망에서는 아주 단호했다. “지금 당장 챔피언스 투어에 합류한다면 그는 비거리가 가장 긴 선수로 꼽힐 것이다.” 스피스는 말했다. “파5 홀은 너끈히 제압할 것이므로 150야드 이내에서 얼마나 타이트하게 볼을 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거기서는 깃대에서 어느 쪽으로든 빗나가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커리가 승부 근성을 타고났다는 건 분명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건 그가 늘 즐겁게 플레이를 한다는 점이다. 농구를 하는 동안에는 골프가 고된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라이벌 팀의 속좁은 팬들을 제외하면 커리에 대해 진지하게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에 대해서는 ‘이타적’이라거나 ‘사려 깊다’거나 ‘기품이 있다’는 평가가 줄을 잇는다. 작고 왜소하다는 이유로 주요 대학에서 퇴짜를 맞았지만, 심지어 득점 라인보다 8~10피트 뒤에서도 숱하게 많은 슛을 성공시키며 NBA 역대 최다 3점 슛 기록 보유자(현재 3729개)로 등극한 그를 묘사하기에 성실과 재능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물론 그는 농구계의 금수저라고 할 수 있다. 프로 농구선수였던 델 커리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은 당연하고, 10대 때는 샬럿 호너츠와 연습 게임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단련시킨 것은 언더도그 시절이었다. 두 번의 리그 MVP와 4개의 챔피언십 반지, 열 번의 올스타 게임, 올림픽 금메달, 농구를 넘어 메이저 스포츠 전체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기까지 커리의 지금을 만든 순간은 NCAA 토너먼트에서 39년 동안 단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었던 데이비슨 대학교 팀을 8강에 올려놓은 때였다.
당시의 장면들을 모아 2023년 애플 TV+를 통해 공개된 <스테픈 커리 : 전설이 된 언더독(Stephen Curry : Underrated)>은 커리가 만든 유내니머스 미디어라는 회사에서 제작한 것이다 보니 일종의 자서전으로서 그에게 우호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반전을 노리는 하위권 팀으로서 기운을 북돋고 싶다면 엄청난 파워를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저평가된다는 것은 타인이 나에게 낮은 가격표를 붙인다는 뜻인데(대부분의 골퍼가 혼자서 감당하는 우울감의 이유), 커리는 그걸 극복한 사람답게 저평가라는 뜻의 ‘언더레이티드’라는 이름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단어의 성공적인 상용화는 골프계를 변화시킬 커리의 기회로 이어졌다.
오클랜드 지역에 식사와 책, 학교 그리고 놀이터를 지원하기 위해 52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모금한 커리의 재단인 ‘먹자·배우자·놀자(Eat. Learn. Play.)’는 여느 자선단체처럼 기부 형태로 운영하지만, 언더레이티드는 영리단체다. 주니어골프투어의 명칭인 언더레이티드는 대형 기업 스폰서와 농구 캠프, 의류 회사를 유치했고, 앞으로 또 누구와 손을 잡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70여 명의 직원이 1년에 한 번 모여 커리의 주재하에 며칠씩 회의를 하며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자금을 분배하는 커리 엔터프라이즈의 조직 중에서 언더레이티드골프투어는 ‘목적이 있는 영리’라는 이 조직의 모토를 가장 순수하게 구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커리의 모든 사업을 총괄하는 ‘서티 잉크’의 사무총장 겸 회장인 수레시 싱은 언더레이티드골프투어가 두 번째 시즌을 맞은 2023년 가을에 스폰서 매출 600만 달러에 운영 비용 약 400만 달러로 처음 흑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온타리오 출신의 성공한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델 커리의 오랜 골프 친구인 싱은 “수익은 전액 투어 확장을 위해 재투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언더레이티드가 생소한 사람도 있겠지만, 2023년 시즌에 언더레이티드는 미국 전역의 12~18세 남녀 각 48명을 대상으로 네 번의 토너먼트와 최종 선발된 선수들이 참가한 시즌 결승전을 치렀다. 2024년 시즌도 동일하게 진행하지만, 지난 5월 런던에서 이 투어의 유럽판이라고 할 수 있는 대회가 월턴히스에서 막을 올렸다.
대회마다 소수의 자리만 지역 예선에 할당되며, 총경비(모든 참가자는 물론 그들의 부모나 형제 및 삼촌 또는 코치 같은 특수 관계자의 항공·숙박·식사·교통비 등을 포함하는 모든 비용)는 차곡차곡 쌓인다. 하지만 커리와 함께하는 것은 마케팅에 도움이 되며,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인 그의 골프 투어 스폰서 비용은 커리의 일반적인 광고비에 비하면 몇 분의 1 수준이다. 유나이티드항공이 비행기 티켓을 거의 대부분 지원하고, 서브웨이는 점심을 제공하며, KPMG와 CDW는 언제나 유용한 현금을 보태준다. PGA투어의 여러 대회에 참여하는(간판과 리더보드, 텐트, 물류 등을 지원) CSM이라는 엔터테인먼트 에이전시가 언더레이티드의 대회를 운영하고 청구서를 보낸다.
160만 달러의 사재를 털어 처음 투어를 시작했을 때 커리는 주변에서 유색인종의 실력 있는 골퍼들을 충분히 찾기 힘들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실제로 선수들을 찾아 미국 전역의 주니어 토너먼트를 돌아다니는 데 초기 비용의 큰 몫이 날아갔다. 커리의 존재감이 아무리 크다고 한들 주니어 투어 운영자들에게는 그들만의 영역이 있었고, 대부분은 누가 전화를 했다고 해서 선수를 빼앗아가려는 신생 투어에 자신들이 보유한 가장 뛰어난 선수의 이름과 연락처를 내줄 마음이 없었다.
나는 2023년 8월 샌프란시스코의 레이크머세드골프클럽에서 열린 커리컵 시즌 결승전을 보러 갔었다. 내 느낌은 긍정적이었지만, 경비가 삼엄한 최고의 회원제 클럽에서 떠들썩한 행사가 펼쳐졌는데, 백인이 소수인 상황을 접했을 때의 충격을 설명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 본격적인 장비를 갖춘 DJ가 1번홀 티잉 구역에서 비트를 뿜어내며 제이지부터 라틴음악 그리고 아기 상어에 이르기까지 선수들이 등장할 때마다 그들의 신청곡을 틀어주었다.
거의 모든 선수가 언더아머와 커리의 브랜드를 멋있게 갖춰 입고 티잉 구역에 올라왔다. 갤러리를 봐도 드레드록(이른바 레게 머리)과 화려한 운동화가 얌전하게 빗어 넘긴 회색 머리나 점잖은 로퍼를 능가했다. 물론 옷깃과 벨트, 바지 안에 넣어 입은 셔츠도 많았지만, 커리의 등번호인 30이 찍힌 농구 유니폼과 금 장신구도 마찬가지였다.
디지털 리더보드나 여러 가지 화려한 시설들이 토너먼트 스폰서와 악수를 나누게 될 우승자들의 영광을 짐작하게 했다. 농구와 미식축구, 육상이나 진입 장벽이 낮은 다른 스포츠처럼 여기서는 골프가 노골적인 야망, 훈련하고 이기면 부를 쟁취하는 종목으로 제시되었다. 언더레이티드골프투어는 그 기회를 원하는 선수라면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 적잖은 아이들이 에미넴처럼 보였다.
스탠퍼드 대학교와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골프 코치로 일하다가 지금은 하워드 대학교 감독으로 있는 샘 퍼이어는 2019년 커리로부터 일곱 자리 액수의 기부금을 받았고, 당연하게도 언더레이티드의 팬이다. “이 투어는 아이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경쟁할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압박감 속에서 플레이하는 법을 배울 두 번째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주니어골프협회(AJGA)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점이다. 이런 게 좋은 의도와 좋은 실행의 차이다. 커리는 단순히 수표를 보내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장에 와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자신을 지지한다는 걸 알게 되면 아이들은 확신을 갖게 된다.”
퍼이어의 아버지는 1965년 당시 윈스턴세일럼 티처스 칼리지라는 작은 대학에서 전미 대표로 선발된 골퍼였다. 아버지는 골프를 사랑했지만 아들에게는 절대로 골프를 강요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에 대해 “인종차별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컨트리클럽 안팎에서 몹쓸 짓을 많이 당했다”고 샘 퍼이어는 말했다. 하지만 샘은 토너먼트 선수가 되었고, 결국 골프를 직업으로 삼았다.
퍼이어는 10년 전 윌 라워리라는 친구가 연결해준 소소한 내기 게임을 통해 커리를 처음 만났다. 골프 채널에서 방영된 <빅 브레이크>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즐겨 본 사람이라면 라워리를 그 프로그램의 참가자로 기억하겠지만, 그는 현재 언더레이티드골프투어의 수석 스카우터이며, 그곳에서 두 번째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리더다.
“아이들에게 골프를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아이가 실력을 쌓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데는 또 다른 많은 일이 필요하다.” 라워리는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투어는 최소한 재정적 부담을 덜어냈다.” 대학 스카우터들을 언더레이티드 대회에 오게 만들고, 대회 우승자들이 더 많은 별(포인트)을 획득해 AJGA 대회에 출전하게 만드는 것이 라워리의 주된 업무지만, 커리와 함께 연사를 섭외하는 일도 하고 있다. 재계와 스포츠, 연예계 등 사회 전반에서 성공한 인물들을 초대해 골프의 가치와 기회가 개인의 발전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를 보여주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열세 살짜리가 자신의 우상과 나눈 단 30초의 대회가 그 아이의 인생에 미칠 영향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커리와 라워리는 미래의 PGA투어 프로를 배출하고 싶어 하지만, 언더레이티드 출신이 언젠가 어떤 회사의 CEO가 되어 투어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좋은 일 뒤에도 약간의 흥미로운 긴장감이 존재한다. 골프의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세대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골프의 분위기를 쇄신할 방법은 무엇일까? 컨트리클럽에 초대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준 호스트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하면서 요샛말로 ‘쩐다’라는 표현을 써도 괜찮을까? 골프 토너먼트가 끝났을 때 앞마당의 잔디밭에서 힙합 댄스파티로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을까? 참고로 레이크머세드에서 열렸던 언더레이티드투어 결승전에서는 타코와 스시 바를 마련하고 여러 문화가 어우러진 분위기로 끝까지 흥을 이어갔다.
“미묘한 균형이 요구되는 일이다.” 커리는 말했다. “우리는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지만,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어디서든 존중받고 환영받을 수 있도록 올바르게 행동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다. 골프의 전통은 여러 가지 면에서 중요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게임의 현대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양쪽의 교육 모두 필요하다.” 진지한 골퍼답게 커리는 상황에 따라 행동할 것을 강조한다.
그도 어떤 코스에는 트레이닝 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가고, 연습할 때도 카트의 오디오로 음악을 틀어놓는다. 하지만 1918년에 설립되었으며 커리도 회원으로 가입한 캘리포니아골프클럽에는 세 자녀를 학교에 등교시킨 후 오전의 조용한 시간에 가며, 어쩌면 시가 한 대를 피우면서 열에 아홉은 걸어서 라운드를 한다.
마호가니 목재와 가죽 의자 그리고 금박을 입힌 챔피언십 보드로 꾸민 인테리어에 창문도 없이 말굽 모양으로 만든 캘리포니아골프클럽의 바는 골퍼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여기서 플레이를 하고 서로 친목을 쌓으면서 자신의 이름이 챔피언십 보드에 몇 번이나 올라가는지 지켜보며 세월을 보내는 것이 일종의 보상과도 같다. 혹독한 훈련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어도 커리는 절대 금주주의자는 아니다. 본질적으로 그는 노스캐롤라이나의 아들이며, 버번위스키의 신흥 강자인 젠틀맨스 컷 버번과의 파트너십도 그냥 보여주기식 행보만은 아니다.
그는 위스키를 깔끔하게 마시거나 소다와 레모네이드를 섞어 즐기기도 하고, 누가 술을 더 많이 마시는지에 대한 화제로 대화가 넘어가면 ‘내가 주량이 좀 세다’는 듯이 씩 웃는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농구 인생도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만큼(경기 후의 회복 훈련, 발목 재활,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 안개를 자욱하게 피운 체육관에서 고글을 쓴 채 양손으로 테니스공을 드리블하는 동시에 번갈아가며 벽에 던지는 상상을 초월한 훈련) 커리가 페이스를 조절한다고 해도 이상하게 여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그는 골프를 마친 후 사람들과 어울릴 시간조차 낼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바에서 잠깐 쉬어 가는 여유가 있다면 좋겠지만, 나는 보통 차로 직행한다.”
그렇게 많은 일을 하고 있으니, 그의 주변에는 유능한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서티 잉크의 최고 운영 책임자인 티파니 윌리엄스는 경영관리상의 문제 때문에 커리가 골머리를 썩일 일이 없도록 회사를 잘 돌보고 있다. 데이비슨 시절에 커리의 동료였으며 NBA에서도 잠깐 활약했던 제이슨 리처즈는 언더레이티드골프투어의 체육 운영 이사인데, 이는 그가 걱정 근심이 많은 골프 부모들과의 소통 창구를 맡고 있다는 뜻이다. 서티 잉크의 홍보 및 사업 개발 부사장이며 1부 리그 골퍼 출신인 크리스 스톤은 골프와 관련된 모든 일에 대한 자문을 맡고 있으며, 커리가 티타임을 얻기 위해 ‘긴급 구조 신호’를 보낼 때 제일 먼저 문자를 받는 사람이기도 하다.
지난 6월 파인허스트에서 열린 US오픈 기간에 커리는 골프의 다양성 증진에 기여한 노력을 인정받아 찰리 시퍼드 상을 받았다. 커리는 PGA투어의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투어 카드를 쟁취한 후 투어에서 2승을 거둔 시퍼드를 생전에 만난 적은 없지만(그는 2015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을 언급하자 커리는 시선을 하늘로 향했다가 다시 바닥으로 내렸다. “그는 골프에서 기회의 문을 열기 위해 너무나 많은 일을 한 분이다. 정말 영광이다.”
이 상을 수여하는 서던 컴퍼니의 CEO이자 흑인 골퍼인 크리스 워맥은 타이거 우즈를 함께 언급했다. “우즈가 이룬 모든 성취와 그가 무너뜨린 모든 장벽에 많은 사람이 감격했다. 그때만 해도 투어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봇물처럼 밀려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엄청난 파급력은 지금까지 찾아볼 수 없었다. 퍼스트 티가 벌이는 일과 그곳의 핵심 가치도 너무 좋지만, 그 아이들이 투어에 진출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려면 대회 경험을 제공해야 하는데 커리가 바로 그걸 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건 단순한 홍보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커리가 골프에 변화를 가져올 강력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가장 처음 알아본 사람은 여러 업계에서 임원을 지낸 웬들해스킨스였다. 그는 2018년 커리를 PGA주니어리그의 홍보대사로 영입했다. 해스킨스는 언더레이티드의 자립적인 경제구조를 높이 평가했다. “이런 일은 자선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커리는 뭔가 좋은 일을 하는 동시에 브랜드 인지도를 쌓고 미래의 고객을 구축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얼마나 많은 유색인종이 골프계로 유입되고 그중에 언더레이티드가 계기가 된 경우는 어느 정도일지에 대한 데이터를 산출하려면 몇 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해스킨스는 커리로 인해 다른 유명 인사들도 같은 취지에 동참하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커리가 하워드 대학교에 도움을 주었듯이 수십 명에 달하는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대표적인 흑인 대학에 도움을 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보라.”
거기에 또 다른 핵심이 있다. 빈부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세상에서 유색인종 골퍼의 유의미한 증가를 이끌어낸다는 건 막대한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제아무리 비범하다고 해도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커리가 하고 있는 일을 너무나 좋아하지만, 그게 선수 개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골프 20/20 다양성 특별위원회의 회장을 포함해 골프계의 여러 고위직을 역임했던 마이클 쿠퍼 박사는 말했다. “우리에겐 캠프와 아카데미, 레슨, 장비가 필요하고 그것을 전국 방방곡곡에 보급해야 한다.
그건 매우 복잡한 시스템이다. 그걸 실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노력의 중복을 줄이고 협업을 늘리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하나로 합쳐 이끌어갈 지도자는 누가 될까? 커리가 그걸 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프로 골프계 일각에서는 커리가 투어 선수들을 영입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주길 바라는 눈치다. PGA투어와 LIV골프 선수라면 언더레이티드 정도 규모의 주니어 프로그램을 얼마든지 만들어 현재의 격차를 해결하는 데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프로나 관계자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수 있다.
한 유명한 에이전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언더레이티드골프투어 대회는 아이들이 푸짐한 선물도 받아가는 최고의 경험이지만, 엘리트 대회와 전략적으로 협력한다면 훨씬 더 좋아질 수 있다. 그들은 아이들을 위해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는데, 이미 더 많은 아이가 참여하고 있는 기존의 조직과 손을 잡는다면 더 효율적으로 그 돈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협업의 기회가 많은 건 분명하다.” 커리는 이렇게 말하면서 노타 비게이와 캠 챔프에서 하고 있는 일들을 거론했다. “토니 피나우와 저스틴 토머스를 비롯한 많은 선수가 내가 하는 일을 격려하고 치하해주었다. 콜린 모리카와는 하딩파크에서 열린 대회에 찾아와 하루 종일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조던 스피스와 안니카 소렌스탐은 커리컵 우승자들이 자신의 토너먼트에 출전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모든 주니어골프투어를 합치면 참가하는 아이의 수가 어마어마하고, 우리 모두는 그 아이들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줄 사람들을 접촉해 프로에 진출하거나 대학에 진학하는 아이들의 수를 늘리는 한편, 골프 이외의 세상에서도 살아갈 능력을 키워주려고 노력한다.”
다른 종목을 제패한 선수가 이런 노력을 기울이며 새로운 세대의 흑인 골퍼들에게 영감을 주는 건 아주 오랜만이지만 선례가 없었던 건 아니다. 1937년부터 1949년까지 헤비급 복싱 챔피언이었던 조 루이스는 PGA투어가 후원하는 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한 흑인 선수였다. 그 대회가 1952년에 열린 샌디에이고오픈이었다. 루이스는 당시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PGA가 어떤 곳인지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에겐 무너뜨려야 할 또 다른 히틀러가 있다.” 그의 아들인 조 루이스 배로 2세는 골프 사업가로 성공했으며, 퍼스트 티의 초대 CEO를 역임했다(2000~2017년).
세상의 모든 위대한 일은 한 사람과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며, 그것이 틔운 싹이 무성하게 자라난다. 언더레이티드투어는 수십 년 동안 좋은 의도를 가진 영리한 사람들이 전략적인 노력과 자원을 쏟아붓고도 성취하지 못한 것을 이뤄낼 수 있을까? 커리를 우상으로 여기는 아이들이 대회에 출전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커리가 다른 종목의 프로 출신으로서 시니어 투어 출전권을 획득하거나 엘리트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하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한 대답은 몇 년이 지나야 알게 될 것이다.
지금 골프 스테이트 워리어스 팬들은 팀의 주장이 이런 꿈을 잠시 미뤄두고 팀 선수들에게 집중해 지난 시즌의 부진을 털어내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끔 오만함의 뒷모습이 초라해 보일 때가 있다. 데이비슨 대학교 농구 팀 감독이었던 밥 매킬럽은 왜소한 체구의 신입생이 득점 라인 10피트 뒤에서 3점 슛을 던지기 시작했을 때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그리고 그 인내심은 세상을 바꿨다.
글_맥스 애들러(Max Ad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