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골프가 이제는 세계적인 스포츠가 됐다. 경기 규칙이 만들어지고, 골프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며, 스포츠 스타의 탄생으로 대중과 골프는 더 가까워졌다.
‘귀족 스포츠’, ‘신사 스포츠’로 불리는 골프 경기는 중세 시대 다른 놀이와 게임의 규칙이 그러했듯이 규칙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래서 스코틀랜드의 각 지역에 있던 골프클럽마다 경기 규칙이 조금씩 달랐다.
최초의 골프 경기 규칙은 1744년 3월 7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리스의 신사골프협회(Gentlemen Golfers of Leith)가 13개를 만들어 4월 2일 5홀의 리스링크스(Leith Links)에서 10명이 참가한 대회에 사용되었다. 그 이후 골프클럽들은 각자의 코스에 적합한 경기 규칙을 만들었다.
1754년 세인트앤드루스 골프협회(Society of St. Andrews Golfers)는 13개, 1773년 브런츠필드골프협회(Society of Golfers at Bruntsfield)는 11개, 1775년 리스 신사골프협회는 15개, 1776년 브런츠필드골프협회는 2개를 추가해 13개, 1783년 애버딘 골프협회(Aberdeen Golf Society)는 23개, 그리고 1786년 크레일골프클럽에서는 6개의 경기 규칙을 가지고 경기를 치렀다. 이렇게 1800년대 중반까지 스코틀랜드의 주요 골프클럽은 자체 골프 규칙을 적용했다.
공통점은 티잉 구역과 볼 교체 등에 대해서는 거의 동일한 규칙을 가지고 있었지만, 로스트 볼과 해저드의 일부 규칙에 대해서는 클럽마다 차이가 있어 스트로크 페널티를 부과하기도 하고 일부 클럽에서는 부과하지 않기도 했다. 또 일부 클럽에서는 루스 임페디먼트의 제거를 허용하기도 했지만, 허용하지 않는 골프클럽도 있어 클럽마다 규칙을 달리 적용하고 있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오늘날 각 골프장마다 자체 규정으로 있는 ‘로컬룰(Local Rule)’의 시조가 된 것이다.
각 지역의 골프협회와 골프클럽에 따라 달리 적용되던 경기 규칙은 1888년 이후에는 R&A에서만 발표되었다. 1897년 9월 R&A에 골프규칙위원회가 만들어져 골프 규칙을 제정·공포하면서 비로소 골프가 스포츠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지역의 각 골프클럽마다 차이를 보였던 골프 규칙이 정비되면서 영국의 골프클럽 수는 1800년대 후반에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19세기 대영제국의 세력이 전 세계로 확장되면서 골프도 함께 그 뒤를 이었다.
영국을 벗어난 골프는 인도 벵갈루루(1820), 아일랜드 로열커라그(1856), 호주 애들레이드(1870), 인도네시아 자카르타(1872), 캐나다 로열몬트리올(1873), 남아공 케이프타운(1885), 홍콩 로열홍콩(1889),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1893) 등 세계 곳곳의 영국령에 골프클럽이 생겨났다.
영국에서 바다 건너 미국에는 이들 국가보다 앞선 시기에 골프가 전해져 1739년부터 골프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으로 골프 클럽이 선적되어 보내졌다는 기록과 1779년 뉴욕시 왕립 관보(Royal Gazette of New York City)의 골프 클럽과 공에 대한 광고, 그리고 1787년 찰스턴에 사우스캐롤라이나골프클럽(South Carolina Golf Club)이 설립된 것을 보면 다른 국가들보다 먼저 영국인의 이주와 함께 골프가 미국에 소개된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미국에는 1888년 세인트앤드루스골프클럽을 시작으로 1891년 시네콕힐스골프클럽, 1892년 시카고골프클럽, 1893년 뉴포트컨트리클럽과 더컨트리클럽이 생겨났고, 이들 5개 골프클럽이 모여 1894년 미국골프협회(American Golf Association, 현재는 United States Golf Association으로 변경)를 설립했다. 미국에서 골프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1910년까지 골프클럽은 267개로 늘어났고, 1932년에는 1100개 이상이 되었다.
당시 미국에서 골프클럽은 상류사회 구성원들의 사교장이었기 때문에 클럽하우스의 출입조차도 멤버가 아니면 통제되었다. 그러나 1930년대 대공황과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골프는 잠시 중단되었다. 이에 따라 세계 4대 메이저 대회인 디오픈(1940), US오픈(1942), PGA챔피언십(1943), 마스터스(1943)가 차례로 중단되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부터 재개된 대회에 바이런 넬슨, 샘 스니드, 벤 호건 같은 유명 선수들이 등장하며 골프의 인기는 다시 급상승했다. 그 뒤를 이어 1960년대에 등장한 아널드 파머, 게리 플레이어, 잭 니클라우스 등 전설의 골퍼들을 통해 인기를 구가하면서 골프는 상업적 후원을 받아 빠르게 프로스포츠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 인기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이르러 톰 왓슨, 닉 팔도, 그렉 노먼이 이어갔다.
20세기 후반 세계 골프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타이거 우즈와 안니카 소렌스탐의 등장으로 골프는 세계적 관심을 받아 전 지구적인 스포츠로 성장했다. 이 무렵 한국에서도 골프가 국민적 관심을 받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1998년 박세리가 LPGA투어 US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국내에서 골프는 애국 스포츠로 인기를 끌었다.
당시 한국은 IMF를 겪으며 어려운 경제 상황에 모든 국민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당시 박세리의 우승은 온 국민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온 국민이 박세리와 그 뒤를 이은 김미현, 박지은 등을 밤을 지새우며 응원했다. 이러한 국민적 분위기는 1999년 한국 정부의 골프 대중화 정책을 만들어내게 했으며, 골프가 오늘날 국민 스포츠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의 골프 열풍은 국민의 의생활에도 영향을 미쳐 골프 의류가 중년층의 평상복이 되는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R&A가 발표한 전 세계 골프장 현황 보고서(Golf Around The World)에 따르면 전 세계에는 3만8081개의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다. 이 중 전 세계 80%의 골프 코스가 미국, 일본, 영국, 캐나다, 호주, 독일, 프랑스, 한국, 스웨덴, 중국에 편중되어 있다.
최근에는 아시아, 유럽, 남아메리카 대륙의 경제성장 국가들에서 골프장 개발이 일어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은 그 면적에 비해 골프장이 부족해 세계에서 개발 잠재력이 가장 높은 곳이다. 이처럼 작은 공놀이에서 시작한 골프 게임이 중세 시대 스코틀랜드에서는 지나치게 국민적 게임이 되어 금지됐었고, 그 인기를 잠재우지 못한 국왕이 결국 자신도 즐기면서 왕가의 게임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 후 대영제국이 출현하며 세계 각 대륙으로 이동하는 영국인들과 함께한 골프는 신사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현대에 이르러 선진국에서는 생활 스포츠로, 개발도상국에서는 귀족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이렇게 세계 각국에서 영국인에 의해 시작되고 보급된 골프가 현대에 이르러서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지닌 양날의 칼로서 가까이하기도, 멀리할 수도 없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국민적 스포츠가 되어 우리 일상을 함께하고 있지만, 결국 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는 모든 국가에서 생활 스포츠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조상우는 호서대학교 골프산업학과 전공 교수이며 한국 골프사 연구와 함께 골프 골동품을 수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