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스피래닉 ‘골프계 소셜미디어의 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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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스피래닉 ‘골프계 소셜미디어의 거물’
  • 인혜정 기자
  • 승인 2023.06.15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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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금융가에 위치한 높은 위워크 건물의 뒤쪽 모서리에 비좁게 박혀 있는 포인츠벳 스포츠북 스튜디오는 한증막처럼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온갖 프로듀서들이 종이를 접어 연신 부채질하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골퍼에서 소셜미디어의 거물로 변신한 페이지 스피래닉은 더워서 힘들다는 내색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몇 분 후, 카메라가 돌아가자 그는 곧 열릴 마스터스에서 자신이 찍은 우승 후보에 대해 말하면서 마치 <투나이트 쇼>에 나온 것처럼 진행자와 자연스럽게 농담을 주고받았다. 소녀티가 묻어나는 말투에 말끝마다 웃음을 터트렸지만, 스피래닉은 마치 트로이의 목마처럼 바비 인형 같은 차림새 안에 오랜 골프 경험과 재치를 곁들인 해박한 스포츠 지식을 감추고 있었다. 

진행자가 코너를 마무리하며 시청자들에게 ‘금발이 더 재미를 본다’는 농담을 던졌고, 컷 사인이 났다. 스피래닉은 그 자리에 앉아 포인츠벳의 소셜미디어에 부랴부랴 몇 개의 포스트를 올리고, 오거스타내셔널의 메뉴에 대한 질문에 답을 했다(“나는 수프를 좋아해요. 수프는 너무 과소평가된 메뉴죠”). 
 
대기실로 돌아온 스피래닉은 코트로 무릎을 덮고 앉아 포인츠벳의 콘텐츠 담당 수석 부사장인 리암 로클라인이 그녀의 성과를 분석하며, 2021년에 합류한 후 회사의 ‘빛나는 스타’가 되어준 것에 감사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확률이 떨어지는 후보를 찍어주는데, 정확하단 말이지.” 그는 땀을 조금 흘리면서도 스피래닉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스피래닉은 감사하다면서 포스트잇에 스케치한 것을 보여주며 그래픽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다음 약속이 임박한 스피래닉은 고맙다는 말과 다음에 보자는 말을 쏟아내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어떤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페이지 스피래닉은 이 틱톡 시대의 반짝반짝 빛나는 성공의 정의에 부합한다. 그는 다양한 소셜미디어 채널에 걸쳐 110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다. 

인스타그램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370만 명이라는 팔로워 수는 다른 모든 골퍼의 소셜미디어 총합을 능가하고, 타이거조차 2위로 밀어낼 정도다. 남자 친구는 이런 스피래닉에게 ‘명성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범주’에 들어섰다고 표현했다. 

두 사람이 어디를 가건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본다.” 외식을 하면 셰프가 서비스 메뉴를 그의 테이블로 보내준다. 쇼핑할 때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몰래 그의 사진을 찍는다. 새로 알게 된 지인들은 그의 유명세 덕을 볼 양으로 자신의 계정을 태그해달라고 부탁한다. 

2018년에 스피래닉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수영복 화보를 찍었다. 작년에는 맥심이 선정한 ‘살아 있는 가장 섹시한 여자’로 뽑혔다. 스피래닉의 치솟는 인기는 단지 그의 (엄청난) 성적 매력만이 아닌 그걸 표현하는 그의 방식 덕분이다. 그는 몸매에 위트를 더하고,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가슴과 탄탄한 골프 실력을 결합하며 후끈한 농담에 예리한 해설을 버무린다. 

“나의 콘텐츠는 재미를 지향한다.” 그는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만약 타이 웹이 다른 타이 웹들의 무릎을 후들거리게 만들었다면, 그는 <캐디쉑>의 등장인물인 그 타이 웹과 비슷하다. 
“나는 가장 멍청하고 과장된 버전의 나를 드러내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냈다.” 스피래닉은 이렇게 말하면서 온라인의 페이지는 일상의 페이지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오프라인에서는 성인 사이즈의 옷을 입고, 트레이닝 바지도 자주 입는다.) 

그가 도발적으로 예쁘게 꾸며진 캐릭터인 건 틀림없지만, 자신을 성찰하고 정치적인 의식을 갖췄으며 무엇보다 농담을 즐긴다. 물론 전에 없던 새로운 캐릭터는 아니다. 메이 웨스트와 돌리 파튼, 골디 혼, 카디 B, 리스 위더스푼의 <금발이 너무해> 시리즈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들처럼 스피래닉도 초콜릿 포장지에 싸인 프로틴 바, 비타민을 채워 넣은 초코 과자인 것이다. 

“그가 골프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 너무 지적이다.” 클럽챔피언의 마케팅 이사인 카산드라 보슈는 이렇게 말했다. 스피래닉은 통계와 스윙 폼, 장비, 잔디의 영향, 선수의 이력에 대해 마구잡이로 이야기해도 허세를 부린다거나 지루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 분야의 더 거물급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콘텐츠를 제시하지 못한다. 페이지는 카메라가 자신을 어떻게 포착하는지 파악해 자신의 몸을 어떻게 보여주고 어떻게 미소를 지어야 하는지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골프를 어떻게 플레이하는지도 알고, 깜짝 놀랄 만큼 실력이 뛰어나다.” 보슈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도 나를 가르치려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 조합은 스피래닉, 샷스코프와 클럽챔피언, 스왜그, X-골프, 그리고 LA골프를 포함해 그와 계약을 체결한 수많은 브랜드에게 성공적이었다. 그런 결과들이 예전 같았으면 Q-스코어라는 인기도 측정 순위를 살펴봤겠지만 지금은 클릭과 노출, 후속 행동과 반응으로 확인되는데, 스피래닉은 거기서 엄청난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지난 3개월 동안 그의 동영상은 조회수 5500만 건을 기록했다. 그의 팬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6%이며, 나머지는 25~55세 남성이고, 대부분이 골프에 관심이 있어서 유입된 사람들이지만 비주류 시청층의 비율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그는 현재 PGA투어나 LPGA투어에서 활동하는 어느 프로 선수보다 검색 빈도가 높다. “그의 파급력은 엄청나다.” 보슈는 2020년에 클럽챔피언의 NIL(대학생 운동선수가 이름, 이미지, 초상권을 사용해서 영리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규정) 명단에 여자가 한 명도 없다는 걸 알고 스피래닉을 영입했다.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는 우리 경영진이 제일 먼저 떠올린 인물은 아니었다.” 보슈는 스피래닉의 장점을 제시했고, 회사 측은 시험적으로 1년간 계약을 하자는 데 동의했다. 현재 그는 이 회사를 대표하는 홍보대사가 되었으며 가장 큰 수익을 안겨주고 있다. 

“그가 포스팅을 하면 그 효과가 웹의 유입량에 곧바로 반영된다.” 클럽챔피언의 마케팅 부사장인 팻 덩컨은 말했다. 덩컨에 따르면, 수천 건의 클럽 피팅과 일곱 자릿수 이상의 매출은 모두 스피래닉의 공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고, 골프계에서는 특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는 유니콘 같은 존재다.”

스피래닉은 자신의 알고리듬이 계속 뜨도록 유지하는 일에 “운동선수 못지않게 몰두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포스트를 언제,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어디에 올릴지를 연구한다. 그는 동영상을 어느 정도의 길이로 어느 플랫폼에 올려야 가장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는지 알고 있다. 

어떤 색이 읽기에 수월하고, 어떤 각도가 유혹적이며, 어떤 캡션이 자극적인지를 파악하고 있다. 조회수가 곧 돈이며, 관심이 장기적인 팬으로 이어지고, 꿀이 있어야 더 많은 파리를 잡는다는 걸 안다. 골프계의 제시카 래빗(<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에 등장하는 섹시한 카툰 캐릭터)으로 변신하려면, 그렇게 고약하게 굴겠다는 게 아니라 겉모습만 닮은꼴이 되려면, 어떤 눈썹을 붙이고 셔츠 단추는 얼마나 팽팽해야 하는지 안다.  

그의 팀은 스피래닉이 단순한 인플루언서가 아니라 하나의 미디어 회사라고 강조한다. 그가 추천하면 판매가 증가한다. 그의 의견은 헤드라인이 된다. 그의 박수갈채는 새로운 사이클에 불을 붙인다. 존재가 곧 하이라이트가 되면 휴식 시간이 없다. 그래서 스피래닉은 매일 게시물을 올린다. 

브랜드에 맞춰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짜고, 유튜브 동영상을 올리고, 트위터에 글을 쓰거나 틱톡 영상을 찍는다. 그는 직접 대본을 쓰고 편집을 하고 조명과 촬영도 혼자 한다. 몇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다. 

헤어와 메이크업도 본인이 하며, 의상을 직접 구입하고, 최소한 일주일에 다섯 번씩 운동을 하는데, 그걸 대회에 맞춰 몸을 준비하는 것에 비유했다. 포스트를 올린 후에는 댓글에 답을 달면서 유대감을 형성하고 관심을 높이며, 악플에 대처하고, 도무지 피할 수 없는 성기 이미지 같은 것들을 삭제한다. 그는 팟캐스트도 운영한다.  

“지나친 콘텐츠 노출이나 항상 온라인에 접속해 있는 건 피하려고 한다.” 스피래닉은 말했다. “그건 줄타기와 같다.” 

올해 그는 온리팬스라는 유료 플랫폼에서 회원 전용 구독 서비스인 온리페이지를 시작했다. “거기에는 누드가 없는데, 그게 사람들이 기대하고 최소한 희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게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스피래닉은 한 달에 10달러의 구독료를 지불하고 골프 레슨과 여행, 독점 공개 사진 등을 볼 수 있는 이 사이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일단 가입하면 가치를 확인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뭐랄까, 젖꼭지가 없으니까.” 

젖꼭지야 있든 없든, 온리페이지의 사용자 증가 추세는 기대 이상이었다고 그의 매니저는 말했다. “페이지의 모든 것, 이를테면 그가 방으로 걸어 들어올 때면 시간이 멈추는 것 같다. 골퍼든 아니든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는 선구자 같은 인물이다.” 보슈가 말했다. 그건 엄청난 성취다. 그리고 그가 이 길을 가고 싶어 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 성취는 더 특별해 보인다. 

(어린 페이지)
엄마인 애넷과 함께 있는 다섯 살의 스피래닉.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는 일곱 살 시절의 모습.
열한 살 때 슬개골 골절로 깁스를 한 모습.

댄과 애넷 스피래닉은 막내딸이 어렸을 때부터 매우 예민한 성격이라는 걸 감지했다. “늘 내 뒤에 붙어서 내 다리 사이로 주변을 살폈다.” 애넷은 딸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리고 앞에 나서서 말을 하는 적이 없었다.” 

그 대신 스피래닉은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정글짐을 하며 혼자 놀았다. 그걸 본 댄과 애넷은 체조가 적성에 맞을 것 같다면서 여섯 살 때 체조 교실에 딸을 보냈다. 스피래닉은 재주가 있었고, 머잖아 하루에 8시간씩 일주일에 6일을 연습에 몰두했다. 

운동선수 출신이었던 부모(댄은 피츠버그대학 시절에 미식축구를 하며 팀의 전국 우승을 경험했고, 애넷은 전문 발레리나였다)는 스피래닉이 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홈스쿨링을 하기로 결정했다. 덴버에 살던 그들은 딸의 연습 시설에서 가까운 콜로라도스스링스로 이사까지 갔다. 

“체조는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스피래닉은 말했다. “다들 ‘올림픽에 나갈 체조선수 페이지’로 알았다.” 하지만 체육관에서도 스피래닉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나는 아주 괴짜 같은 아이였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안경을 쓰고, 어디서나 고무장화를 신고 다녔다. 머리카락이 잘 빠졌고, 천식이 심했다. 대머리에 흡입기가 필요한 아이에게 세상은 녹록한 곳이 아니다. 아이들은 3m쯤 거리를 두고 서서 나를 쳐다봤다.” 

아이들은 돌도 던졌다. 스피래닉을 놀리고 괴롭히는 게 그 또래들의 취미가 되었다. 복도를 간신히 통과하고, 다른 아이들이 몰래 자신의 음료수에 침을 뱉는 걸 지켜봤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한번은 생일 케이크를 가져갔더니 다른 여자아이들이 그가 보는 앞에서 그걸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철없고 멍청한 짓이었지만 그런 일들이 아홉 살에게는…” 그는 말끝을 흐렸다.  

스피래닉은 그걸 버티고 A급 코치의 지도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슬개골 골절이라는 좌절이 닥쳤다. 두 번째 골절은 올림픽의 꿈에 완전한 종지부를 찍었다. 그의 마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프로 선수가 되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꿈이었다.” 스피래닉은 말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뭔가를 찾고 싶었다.” 페이지의 언니인 렉시는 스탠퍼드에서 7종 경기 선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애넷은 스포츠심리학자인 짐 로어에게 전화를 걸었고, 운동선수로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아이의 성격에 맞는 종목을 찾아주는 것이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건 바로 골프였다. 

열세 살의 스피래닉은 스윙 한 번 만에 골프와 사랑에 빠졌다. “동년배의 아이들은 대부분 이미 트로피를 50개씩 가지고 있었다.” 애넷은 말했다. 뒤처진 걸 따라잡기 위해 애넷과 페이지는 스피래닉이 시즌 내내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애리조나에 집을 마련했다. 스피래닉은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을 했고, 대학에 진학했다. “학교 무도회도, 미식축구 관람도 아무것도 없었다.” 스피래닉은 말했다.  

그 대신 승리를 얻었다. 스피래닉은 1순위로 대학에 스카우트되었다. 골프 장학금을 받고 애리조나대학에 진학했을 때, 스피래닉은 자신이 이 전환기를 통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그동안 잘 보호된 울타리 안에서 살았고 술을 마셔본 적도, 남자 친구를 사귀어본 적도 없었다. 모든 게 당황스러웠다.  

스피래닉은 2학년 가을 학기를 마치고 샌디에이고 주립대로 전학했고, 거기서 실력을 발휘했다. 팀의 주장을 맡았고, 여러 토너먼트에서 성공적인 플레이를 펼쳤으며, 마운틴 웨스트 콘퍼런스 챔피언십에서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그 뒤에서 스피래닉의 정신 건강은 허물어지고 있었다.  

어려서 겪은 사회생활의 불안감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의사는 항우울제를 처방해주었지만, 스피래닉은 그 약에 부작용을 보였다. 4학년 때는 불안이 너무 심해져 식료품점에 가거나 외식을 하러 집을 나서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누가 쳐다본다는 걸 생각만 해도 견딜 수 없었다. 섭식 장애가 생겼다. 그래서 스스로를 격리한 채 몰래 챙겨둔 계피맛 크래커로 연명했다. 

골프 연습 시간에 감독이 스피래닉에게 본인에게 너무 가혹하게 굴지 말라면서 마음을 비울 수 있도록 고안된 연습법을 알려주었다. 조그만 실수도 페이지에게는 엄청난 타격이 되었다고 애넷은 말했다. “페이지라는 사람에 대한 가치까지 흔들린다고 생각했다.” 

이 무렵이었던 2015년 7월에 남자들끼리 우호를 다지는 커뮤니티 ‘토털 프랫 무브’에서 활동하던 댄 레지스터라는 한 블로거가 우연히 스피래닉의 사진을 보게 되었고, 그의 섹시함을 이 인기 높은 사이트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뀌게 된 순간이었다.” 스피래닉은 말했다.  

스피래닉을 ‘매우 매력적인 골퍼’라고 소개한 레지스터의 글은 이렇게 이어졌다. “매일 엉덩이와 가슴을 바라보는 것도 부담스러워졌을 때, 남자는 과연 뭘 위해 살아야 할까? 그렇게 여러분의 친구가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이 섹시 얌얌이가 내 삶으로 걸어 들어왔다.” 레지스터는 그런 식으로 스피래닉의 신체적인 매력을 칭송하며, 그에게 자신과 같이 도망가자고 애원했다. 

“페이지는 그때 연습 라운드를 하고 있었다.” 애넷은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했다. ‘자꾸 메시지가 와.’ 그리고 집에 가서야 전화기를 제대로 들여다봤는데, 마치 뉴스의 자막처럼 끝없이 이어졌다.”

스피래닉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몇 시간 사이에 500명에서 10만 명으로 늘어났다. 그러자 애넷은 스피래닉이 긴장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너무 압도적이었다. 다른 아이 같았으면 ‘와, 이거 진짜 신난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페이지는 그렇지 않았다. 이걸 그애가 얼마나 힘들게 받아들였는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온 가족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스피래닉은 바닥에 배 속의 태아 자세로 누워서 엉엉 울었다. 애넷과 댄은 혹시라도 딸의 정신 건강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온라인에서 오가는 말 때문에 아이의 자존감이 상처를 입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스피래닉은 겨우 스물두 살이었고, 오랫동안 할 수 있기를 바라며 골퍼의 길에 막 들어선 참이었는데, 뭘 해보기도 전에 “LPGA 선수들이 받아야 마땅한 스포트라이트”를 훔쳐간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도발적인 의상’을 입고 플레이를 하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주장했다.” 스피래닉은 말했다. “우리는 둘 다 레깅스를 입고 살았다.” 애넷은 설명했다. “페이지는 체조선수였다. 그러다가 골프로 전향했더니, 이제 몸을 드러내는 게 금기시된다고? 그건 너무 이상했다.” 

딸의 몸이 인터넷에서 열광적인 찬사의 대상이 된 동시에 수치심의 원천이 되었다는 게 ‘어디서는 그렇게 되려고 하고, 어디서는 그래선 안 된다’고 한다는 자체가 애넷이 보기엔 이상하기만 했다. 

스피래닉은 누군가의 심기를 거스른다거나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단언했다. 늘 입던 옷이었고, 그런 몸을 타고났다. 자신이 올린 것도 아니고 그런 게 올라온 줄도 몰랐던 글이 일파만파 퍼졌다고 해서 그를 비난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 

소셜미디어의 쏠림 현상에 따라 그는 더 많은 관심을 받았고, 그 후로는 그 상황이 자체적인 추진력과 의미를 획득했다. 일단 봇물이 터지자 악플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스피래닉은 선수들로부터 그가 악역향을 끼치는 존재이며, 게임을 망치고 있다고 비난하는 다이렉트 메시지를 받았다.  

“페이지는 그때까지도 프로 선수가 되길 원했다.” 애넷은 말했다. 2015년 12월에 두바이에서 열린 레이디스유러피언투어 대회에 초청을 받아서 참가했다. 그건 결국 끝의 서막이 되었다. “처음부터 나의 참가를 놓고 엄청난 논란이 벌어졌다.” 스피래닉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프로 선수들과 골프계의 전설들이 과연 내가 거기 있을 자격이 있는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내가 꼴찌를 한다는 것에 베팅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경험도 없고, 언론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꼬마였다. 나는 폭탄을 정면으로 맞았고, 그것에 대해 대놓고 불평을 했다. 자폭의 쇼가 되고 말았다.”

스피래닉은 77-79타를 하며 107명 가운데 101위를 했지만, 기록적인 시청률을 견인하기도 했다. 소셜미디어는 5억 건의 조회수를 올렸고, 레이디스유러피언투어 대회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본인은 내켜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스타가 만들어졌다. 

“나는 골프에서 실패했다.” 그는 건조한 말투로 말하고는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그는 짧은 인생이지만 그중에 많은 시간을 LPGA투어 카드를 획득하기 위해 매진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없게 되었을 때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는 뛰어나지 못해서 모두를 실망시킨 자신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심리상담을 받았다. 그는 부모에게 많은 빚을 졌다고 느꼈다. 부모는 그를 위해 너무나 많은 것을 희생했다. 그는 산산조각이 난 느낌이었다.  

스피래닉은 “더는 불안을 느끼고 싶지 않다”면서 제발 자신을 고쳐달라고 심리상담가에게 애원했다. 상담가는 심리상담 시간에 종종 그렇듯이 질문으로 답을 대신했다.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추진력이 뭐였다고 생각하나?” 스피래닉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불현듯 깨달음을 얻었다. “상담가는 내 불안이 나의 슈퍼파워라는 걸 일깨워주었다.” 그는 말했다.  

스피래닉은 그때부터 더는 허상 속에서 추구해온 자신의 이미지에 집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겪은 일들이 어처구니없고 불공평하긴 하지만, 그것에 대해 뭘 어떻게 할지는 자신의 선택이라는 걸 수긍했다. 스피래닉은 맞대응을 선택했다. “나는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다 꺼지라 그래. 마음가짐을 바꾼 것이다.”

“너무나 희한한 일이었다. 우리는 페이지가 지금 하고 있는 그런 일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애넷은 말했다. “그 애는 터닝 포인트에 도달했고, ‘이걸 내 방식대로 하겠어’라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스피래닉은 예우의 정치학 따위는 개나 물어가라고 결심했다. 프로 골퍼가 될 수 없었다고 해서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밀려 자신이 사랑하는 스포츠를 멀리할 필요는 없었다. 그에게는 생계를 꾸려갈 새로운 방법도 필요했다.  

스피래닉은 2021년 3월에 올린 마스터스 타월 포스트를 “내가 처음으로 세상에게 나 자신에 대해 변명하지 않은 순간”이라고 말했다. 브라를 착용하지 않은 맨살 위에 녹색 재킷의 단추를 풀어 입은 사진과 함께 그는 자신이 받은 이런 댓글을 적었다. 

“가슴골이 보이는 사진을 계속 올리면 아무도 너를 진지하게 봐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밑에 자신의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이젠 내가 원하는 걸 계속 하려고. 이 이미지를 담은 타월을 조금 만들었어. 사거나, 아니면 너희 악플러들 눈물 닦으라고.” 

그는 그걸로 1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벌었다. 그 포스트에는 33만8000개의 좋아요, 1만1000개의 댓글이 달렸다. 전에는 자신의 이미지를 상품화해서 돈을 번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때부터 스피래닉은 자신의 성적 매력을 본격적으로 활용하며 더 많은 후원을 받고 광고 계약을 체결했다. 지명도가 높아지면서 전통적인 골프팬은 더욱 분개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젠 그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물을 마시며 고고한 사람들의 여린 마음을 달래주려고 여전히 안간힘을 썼던 시절, 터틀넥 스웨터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손목만 드러낸 사진을 올렸던 때를 떠올렸다. 그 사진에도 악플러들은 ‘헤픈 년’이니, ‘창녀’ 같은 댓글을 달았다. 

“나는 나를 진지하게 여긴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러리라고 믿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런데 끝끝내 그렇지 않았다.”  

그 후로 8년 사이에 스피래닉은 수백만 달러 규모의 왕국을 직접 운영하는 거물로 성장했다. 프로 선수가 되어 벌었을 돈보다 훨씬 많은 액수였다. “내가 구축한 플랫폼과 내가 가진 영향력을 알고 어느 곳에 들어갈 때는 강력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건 단지 내 몸 때문만이 아니라 내 두뇌, 나라는 사람, 이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진 결과다. 나는 한 번도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그는 포크를 내려놓고 환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모두에게 ‘너나 잘해’를 날리는 힘으로 쌓아온 경력인 셈이다.”

바쁜 한 주의 끝이었고, 스피래닉은 녹초가 되었다. 그는 펑퍼짐한 트레이닝복에 맨발인 채로 문을 열었다. 매니큐어는 새로 칠했는데, 중지에는 스마일리 아이콘을 그려 넣었다.  

안락의자에 편안히 앉은 스피래닉은 자신이 지금 원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계속해서 자신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골프계에 존재하는 무언의 규칙들을 깨트려서 더 포용적인 스포츠로 만드는 것. 그는 자신을 ‘부적응자들의 홍보대사’라고 칭했는데, 그건 컨트리클럽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고 정장 바지나 폴로셔츠가 없는 사람, 깔끔하게 나인 홀을 플레이하고 친구들과 핫도그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싶어 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의미했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페블비치나 오거스타내셔널에서 플레이를 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골프의 잣대를 몇 단계 낮춰서 취미 생활에 한없이 지출할 돈이 없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스피래닉은 환상을 품지 않았다. 이미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자신이 어떤 세계를 상대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골프를 바꾸는 건 정말 어렵다.” 

그는 왕년의 선수이자 해설자였던 홀리 손더스(Holly Sonders)를 떠올렸다. 손더스는 토플리스 여자스포츠리그를 출범했는데, 스피래닉은 그것에 전혀 불만이 없었다. “홀리가 선수 시절에 볼 꼴, 못 볼 꼴을 얼마나 많이 봤을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녀를, 그녀의 외모를 비난했다. 그녀의 스포츠리그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그건 막대한 수입원이 될 테고 홀리에게는 정말 잘된 일이다.”

스피래닉의 몸도 여전히 온라인에서는 열띤 토론의 주제가 되고 있다. 그는 인플루언서가 된 후로 13kg 정도 체중이 늘었다고 말했다. “동영상을 찍었는데, 허벅지 뒤쪽에 셀룰라이트가 조금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그는 몸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의 직업에서 그건 바람이 휘몰아치는 터널에서 카드로 집을 세우려는 것에 비유할 만한 일처럼 보였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악플을 달며 시간을 허비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스피래닉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나는 나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불편해하며, 내 외모를 혐오하기도 했다. 그렇게 인생의 바닥까지 내려갔지만 온라인에서 누군가를 보고 ‘그래, 저것들을 때려눕히겠어’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는 말했다. 

스피래닉은 언젠가 비행기에서 명랑한 중년 여성과 나란히 앉았던 때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 여성은 커다란 아이패드를 켰는데, 스피래닉이 봤더니 푸근해 보이는 그 인상으로 온갖 글에 계속해서 악플을 달고 있었다. 패션 인플루언서, 래퍼, 그다음으로는 개에 대한 블로그에도 혐오의 글을 남겼다. “개도 싫어하더라.” 스피래닉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신랄한 독설의 전송 버튼을 누른 그 여자는 창문을 닫고 손주들에게 보낼 밸런타인데이 카드를 쓰기 시작했다.  

“모든 게 한눈에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스피래닉은 비행기의 그 독설가는 자신이 가하는 피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본인도 그걸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걸 보니, 이런 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스피래닉은 부정적인 말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게 놔두지 않았다. 그는 앞만 바라봤다. 소셜미디어 업계의 지형은 빠르게 변화하고, 스피래닉은 현명하게도 지금 통하는 것들이 자신이 더 나이 들고 어쩌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경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는 여성 골퍼의 삶에 대한 어린이책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토크쇼 진행자가 되면 아주 잘할 거라고 장담했다. “사람들은 내가 완전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포스트 하나를 봤는데, 내가 젖꼭지를 내놓고 서 있는 사진이 있었다면 곧바로 ‘이 여자는 머리가 비었다’고 생각한다.” 

그를 과소평가할 사람들에게 그는 한때 ‘암여우’라는 이미지였지만 유기농 아기용품 회사를 차려서 작년에 3억14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제시카 알바, 빅토리아 시크릿의 모델 출신이지만 토크쇼와 자신만의 미디어 제국을 구축한 타이라 뱅크스의 사례를 거론했다. “이런 사람들의 목록은 계속 이어진다.” 

스피래닉은 자신을 비난하고 페미니즘을 폄하하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분노를 드러냈다. “내가 만드는 콘텐츠는 그렇게 도발적이지 않다. 내 몸이 어떤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건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불법적인 일을 하는 게 아니다. 나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가장 가혹하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여자인 경우가 많은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다. 

“어쩌면 내가 모든 남자들의 환상 속에 존재하는 인물, 골프를 사랑하고 비키니를 입는 여자여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스스로를 여자들이 좋아하는 여자라고 생각한다. 나는 평범한 가정 출신이다.”

스피래닉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자신이 받은 반응이 모든 여자들, 이른바 성자와 죄인 할 것 없이 모든 여자들에게 벌어지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들은 우리를 어떤 틀에 집어넣고, 우리가 밖으로 나오려고 하면 화를 낸다.”

전날 밤에 저녁을 먹을 때 스피래닉은 잠깐이지만 다 그만두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다. “소셜미디어를 완전히 삭제할 수 있다.” 그러고는 샴페인을 한 모금 마셨다. “다 지우고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관심, 후원, 돈, 온갖 호들갑스러운 소동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재미는 그리울 것 같았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너무나 재미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기본적으로 쓰레기들이 넘치는 타임라인에 신선한 숨을 불어넣고 싶다.” 그러고는 당분간은 분명한 목표가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글=앨리슨 글록(Allison Glock)
사진=캐럴라인 톰킨스(Caroline Tompk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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