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생활자] 진짜 코스 설계가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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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생활자] 진짜 코스 설계가 찾기
  • 서민교 기자
  • 승인 2022.06.2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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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평면도만 그릴 줄 알면 건축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들며 상상의 영역에 살고 있는 골프 코스 설계가는 누구일까. 
골프는 타깃을 향해가는 과정의 게임이다. 어느 지점을 목표로 공략해 나갈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선택을 해야 한다. 코스 설계가는 그러한 ‘선택’ 루트를 상상해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게임을 할 수 있는 게임 테이블을 만드는 직업이다. 세종필드골프클럽 4번홀(Par5, 555m)은 자연 지형에서 파를 어떻게 구성할지, 홀을 어떤 모양으로 배치할지 고민한 결과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했다. 티 샷부터 어느 지점을 선택해 공략하게 할지 고민해야 하며 그 고민은 온 그린을 하기까지 계속된다. 사진_이현강 제공
골프는 타깃을 향해가는 과정의 게임이다. 어느 지점을 목표로 공략해 나갈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선택을 해야 한다. 코스 설계가는 그러한 ‘선택’ 루트를 상상해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게임을 할 수 있는 게임 테이블을 만드는 직업이다. 세종필드골프클럽 4번홀(Par5, 555m)은 자연 지형에서 파를 어떻게 구성할지, 홀을 어떤 모양으로 배치할지 고민한 결과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했다. 티 샷부터 어느 지점을 선택해 공략하게 할지 고민해야 하며 그 고민은 온 그린을 하기까지 계속된다. 사진=이현강 제공

10여 년 전 여주 A 골프장을 설계할 때 일이다. 사업주인 회장은 체형이 작고 골프 실력이 뛰어나지 않았다. 골프장 대표는 나름 명문 골프장에서 오래 근무한 경력이 있는 골프장 운영 전문가였다. 몇 번의 설계 제안을 통해 기본 설계안을 결정한 후 상세 설계를 발전시키던 어느 날, 골프장 대표의 설계 미팅 요청이 있었다.

비장한 표정으로 마주 앉은 대표는 돌돌 말아온 도면을 펼치면서 자기가 설계를 이렇게 바꿨다고 설명하며 내심 동의를 구하는 모습이었다. 며칠 전 보내준 설계 발전안의 벙커 이곳저곳을 볼펜으로 엑스 표시하는 것도 모자라 대충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새로운 벙커 위치를 표시한 거라고 겸연쩍게 말했다. 벙커는 모두 페어웨이 가장자리로 밀려나 해저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위치였다. 더 놀라운 것은 자연 지형을 보전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하고 수정하면서 자연 계곡을 건너 치는 전략적인 홀을 만들었는데 그 계곡을 다 메워버린 것이었다.

놀란 가슴과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렇게 바꾼 이유를 물었더니, 사업주 회장이 드라이버 비거리가 짧아서 계곡을 넘겨 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전략적인 위치에 있는 벙커는 건너 치는 게 힘들고 빠질 위험이 크기 때문에 메우거나 건너 치지 않아도 되는 위치로 옮겼다는 것이다. 설계 미팅을 하자고 한 이유는 회장과 그렇게 결정했으니 설계가는 그 모양대로 도면을 그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설계가는 왜 필요할까? 설계가는 사업주의 생각을 그리는 단순 기술자인가?

◇ 진짜는 누구일까

골프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정해진 루트를 따라 한 방향으로 타깃을 향해 나아가는 길 찾기 게임이다. 골프장은 크로스컨트리 경기장과도 같고, 각 홀에서 길을 선택하는 것은 바둑과 유사하며 타깃을 겨냥하는 것은 사격, 당구와 같은 속성을 지닌다. 주어진 자연환경에 맞게 18개 홀의 스토리를 짜서 연결하는 것을 보통 라우팅(Routing) 또는 라우팅 플랜이라 한다. 라우팅 플랜은 골프 코스의 뼈대를 만드는 것으로, 건물의 평면도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세계적인 코스 설계가 마이클 허드잔의 말이다. 건물 평면도는 각 공간의 크기, 위치, 방향, 상호 관계를 나타낸다.

마찬가지로 라우팅 플랜은 다양한 각각의 홀이 어떤 길이, 방향, 각도로 연결되는지를 나타낸다(옆 페이지 ‘개략 라우팅 플랜’ 그림 참고). 그러나 건물 평면도에는 개략적인 공간 구성만을 나타낼 뿐 건물의 기초, 골격, 설비, 전기, 자재 등과 같은 세부 설계 내용이 표현되지 않는다. 라우팅 플랜 또한 실제 골프 코스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각 홀의 계획 레벨, 배수 방향 및 관로, 토공량, 관개용수의 형태와 세부 사항, 그린, 티, 벙커, 연못, 식재 등 세부 내용을 포함하지 않는다.

누군가 건물 평면도 정도를 그릴지 모르지만 그를 건축 설계가라고 할 수는 없다. 골프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비슷하게 코스 라우팅 플랜을 그릴 수 있지만 이들을 코스 설계가라고 할 수는 없다.

코스 설계를 하면서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는 “이 골프장 설계가는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이다. 골프장은 하나인데 그 골프장을 설계했다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골프장 사업을 하는 회장, 대표 심지어 실무책임자 등이 건축 평면도처럼 라우팅 플랜을 그렸거나 코스 설계가가 그린 라우팅 플랜의 일부를 변경하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해서 그들을 코스 설계가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 타인의 설계안에 대해 누구나 의견을 내고 훈수를 둘 수는 있다. 하지만 진짜 코스 설계가는 골프 코스 전체에 대한 구상을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수단을 통해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필자는 라우팅 플랜을 한 사람이 코스 설계가라고 생각한다. 코스 설계의 핵심은 길 찾기이자 연속적 경험의 얼개를 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라우팅 플랜만 한 사람을 설계가라고 할 수는 없다. 또 라우팅 플랜을 하지 않고 공사를 위한 시공 설계에만 참여한 엔지니어를 코스 설계가라 할 수도 없다.

라우팅 플랜뿐만 아니라 기술적, 규정적 계획 수립 절차에 따라 상세 설계를 진행한 다음 현장 특성에 맞게 설계를 수정하고 발전시켜 안정적인 시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골퍼에게는 흥미롭고 안전하며 사업주에게는 합리적인 비용을 지불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진정한 코스 설계가다.

개략 라우팅 플랜. 사진=이현강 제공
개략 라우팅 플랜. 사진=이현강 제공

◇ 새로운 직업 탄생

최초의 골프 코스 설계가로 일컫는 스코틀랜드 출신인 앨런 로버트슨과 올드 톰 모리스 등은 자연 지형을 살펴서 그린 위치를 찾고 목록을 만들거나 그림으로 그려 홀 배치 계획도를 작성하고 경계 표시를 하는 초보적인 수준의 골프 코스 설계를 수행했다. 스코틀랜드를 중심으로 대략 1870년대가 되어서야 골프 전문가들이 코스를 라우팅, 즉 설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코스 설계가 대부분은 코스 관리자이거나 골프에 상당한 기량을 가진 프로 선수인 경우가 많았다. 올드 톰 모리스는 프레스트윅의 클럽 프로였고 디오픈을 네 차례 우승했다.

골프 발상지는 스코틀랜드이지만 현대 골프를 발전시킨 것은 미국이었다. 대부분 스코틀랜드 이민자 출신의 코스 전도자들은 미국에 골프를 소개하며 정착하고 계속 발전시켰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 경제가 회복, 성장을 계속하면서 미국 코스 설계가들은 여가 활동에 대한 사회적 욕구가 증가하면서 새로운 골프 붐이 일 것을 직감했다.

설계가들은 다시 찾아온 천금 같은 사회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전문가 조직을 만들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이 찾은 비슷한 전문가 조직은 1899년 결성돼 새로운 전문가 그룹으로 자리 잡은 미국조경가협회(ASLA)였다. 미국 코스 설계가들은 ASLA와 유사하게 업계에서 영향력 있고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기를 희망했다.

로버트 브루스 해리스와 로버트 트렌트 존스가 주도한 이 새로운 전문가 그룹의 첫 번째 모임은 미국골프코스설계가협회(ASGCA)라는 이름으로 1947년 2월 전국의 여러 코스 설계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뉴욕에서 개최됐다. 로스가 명예회장을 맡고 해리스가 초대 회장 직무를 대행했다. ASGCA 창립 회원 14명은 5명의 조경가와 농경학자, 4명의 계약자, 3명의 골프 프로, 2명의 사업가 등 다양한 전문가로 구성됐다.  

흥미로운 것은 ASLA를 사례로 한 영향 때문인지 창립 회원의 약 1/3이 조경 관련자였고, 설계가를 디자이너(Designer)가 아닌 아키텍트(Architect)로 칭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골프 코스 아키텍트(Golf Course Architect)는 코스를 만드는 데 필요한 전체 과정과 기술을 관리하는 총괄자, 즉 코스 설계가로 해석하는 것이 적정하다고 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코스 설계가는 ‘Designer’보다 ‘Architect’로 부르는 것이 합당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코스 설계는 18홀 기준 약 100만 제곱미터의 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자연환경을 분석, 해석해 라우팅 플랜을 짜고 각 홀마다 골프 플레이를 상상해 전략성을 부여한다.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 토목, 건축, 조경, 교통 등 종합적인 분야와 협업해 상세 설계를 발전시킬 뿐만 아니라 관련 규정에 맞는 기술적 도서를 작성하고 합리적인 시공과 유지관리가 이뤄지도록 하는 과정 전반을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골프장은 해방 후 1980년대까지는 대부분 일본 설계가들이 투 그린의 정원식 코스로 설계했고, 1990년대 이후로는 미국 코스 설계의 영향을 받은 토너먼트 스타일 코스로 설계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인 코스 설계가들은 그 틈바구니에서 자생했다. 한국 최초 골퍼이자 설계가인 연덕춘이 1960년대 중반부터 코스 설계를 시작했기 때문에 한국 골프 코스 설계 역사는 약 60년에 이르지만 안타깝게도 미국 ASGCA와 같은 제대로 된 코스 설계가 단체는 없었다.

많이 늦었지만, 10여 년 전 한국 골프 코스 설계가 모임으로 시작한 단체가 2021년 사단법인 한국골프코스설계가협회(KSGCA)로 등록돼 활동을 시작했다. 전문가 조직이 제대로 활동을 못하다 보니 그동안 코스 설계에 대한 이해와 설계가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한 논의도 많이 부족했다. 한국 코스 설계가들이 깊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 설계 생활자의 일상

코스 설계가는 2차원 지도와 3차원 실제 지형 속에 파묻혀 산다. 2차원과 3차원을 변환하는 데 익숙해야 하고 지형의 변환 사이에 골프 플레이를 더해 가상의 골프를 하는 데 익숙하다. 지형을 보면 어떻게 자연 지형을 살리면서 전략성을 구현할지, 파를 어떻게 구성할지, 홀을 어떤 형태로 배치할지 늘 고민한다.

설계 PT를 할 때 “몇 번 홀이 어느 골프장 몇 번 홀과 유사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위성사진으로 골프장 지도를 보면 비슷한 형태의 홀이 많기도 하다. 하지만 각 홀이 놓인 주변 자연환경과 방향, 길이, 경사, 그린 상세, 페어웨이 경도, 벙커 깊이, 잔디 종류 등은 어느 하나 같은 홀이 없다고 대답한다. 비슷하더라도 18홀이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따라 코스의 차별성은 무한하게 연출할 수 있다. 많은 홀이 비슷한 것 같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골프 게임을 상상하고 현실에 실현하는 것이 코스 설계가의 숙명이자 일상이다.

첫머리에 이야기한 그 골프장 설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필자는 사업주의 의견을 듣는 것은 설계가의 의무이지만 전체 설계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이고 단편적인 설계 조정 의견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맞섰고 급기야 고성이 오가기까지 했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는 일이었고 타협할 내용도 아니었다. 더 이상 코스 설계가가 설계할 필요가 없는 상황일 뿐만 아니라 사업주가 원하는 대로 그려주는 단순 드로잉을 설계라고 할 수는 없으니 설계를 사양하겠다고 말했다. 다행히 사업주가 상황을 이해하고 전적으로 코스 설계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일부는 뜬금없는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 골프장을 갈 때마다 동반자가 선입견을 품을까 봐 먼저 설계 내막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예민한 사람들은 그 뜬금없는 공간을 정확하게 짚어내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코스 설계가가 전지전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전문가의 안목과 의견을 최대한 끌어내고 경청해 더 좋은 골프 코스로 만드는 데 활용하지 못한 사업주의 선택이 못내 안타까울 따름이다. 

*코스 설계가 이현강은 오렌지엔지니어링 전무이자 골프다이제스트 코스 자문 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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