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리버풀에서 디오픈을 석권한 챔피언이 당대 최고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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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리버풀에서 디오픈을 석권한 챔피언이 당대 최고인 이유
  • 한이정 기자
  • 승인 2023.07.2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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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데뷔. 2023년 디오픈챔피언십에서는 새로 조성한 파3 17번홀이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누가 설계적 수학 난제를 풀 것인가. 로열리버풀에서 디오픈을 석권한 챔피언이 늘 당대 최고의 선수인 이유. 글_데릭 덩컨(Derek Duncan)

 

디오픈챔피언십을 개최하는 대부분의 골프 클럽들은 그곳만의 고유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올드 코스는 역사와 위상, 세인트앤드루스라는 도시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매력을 자랑하며, 턴베리는 높은 기암괴석이 늘어선 해변, 로열세인트조지스와 포트러시는 풀이 덥수룩하게 자란 채 굴곡을 이루는 모래언덕들, 카누스티는 가학성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의 어려움과 배리 번이 미치는 까다로운 영향력, 그리고 트룬은 곳곳에 가시금작화가 만발한 채 철로를 따라 곧게 전진했다가 돌아오는 형태가 특징이다.  

하지만 잉글랜드 리버풀 서쪽에 위치한 호이레이크라는 해변 마을에 있는 로열리버풀골프클럽은 무심코 바라보면 그저 황량할 뿐 별다른 특징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드넓은 디 하구 갯벌의 고만고만한 모래언덕들을 지나가는 몇몇 홀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순한 느낌이며, 농지였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탁월한 링크스라기보다는 건초밭을 연상시킨다. 광활한 페스큐 벌판을 홀들이 굽이굽이 지나가는 뮤어필드나 주변을 에워싼 모래언덕의 봉우리와 능선 아래에서 플레이를 하다 보면 길을 잃은 느낌에 빠져들기도 하는 로열버크데일처럼 대자연의 품으로 탈출한 듯한 기분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로열리버풀의 홀들은 도로나 소박한 집의 뒷마당에 닿아 있다.  

하지만 골프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호이레이크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이 코스에 더 많은 매력이 숨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 화려하지 않은 겉모습 아래에는 수학의 난제 같은 설계가 펼쳐져 있다. 호이레이크의 페널티 에어리어(워터해저드)는 요란하지 않지만 꾸준하다. 사소한 실수에 불과하더라도 샷이 가장자리가 잔디로 뒤덮인 벙커에 빠져버리면 그 결과는 걷잡을 수 없다. 그 가장자리에 뒤엉킨 잔디로 볼이 쏙 들어가버릴 수도 있고, 때로는 가시금작화 틈으로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타깃 골프. 파4 12번홀의 그린 주변에는 움푹 파인 곳이 많다.

그린은 깊고 페어웨이에 비스듬하게 놓여 있으며, 가장자리가 볼록하게 솟아오른 경우가 많다. 벙커가 엄호하는 그린이라도 볼을 굴려 올릴 틈은 있지만, 그 틈으로 어프로치 샷을 하려면 좁다란 페어웨이를 이리저리 가로지르는 벙커 근처로 드라이버 샷을 보내야 한다. 긴 비거리를 노려보는 것도 가능하지만 실을 꿰는 수준이 요구되며, 더 안전한 곳으로 레이업을 할 경우에도 정확성에 대한 엄청난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전진하는 보병의 행렬처럼 끝없이 물결치는 지형 위에서 이런 플레이를 펼쳐야 한다. 하지만 바람의 방향이 이리저리 바뀌고 잔디는 단단한 데다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라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영국의 위대한 작가 버나드 다윈은 100여 년 전에 이미 이렇게 말했다. “호이레이크에서는 평온한 듯 허세를 부리거나 단정한 척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이곳은 단단하고 꾸밈이 없고 울퉁불퉁하며, 오로지 남자만이 그곳을 정복할 수 있다.”

미리 생각하고 각도와 거리를 계산하는 전략적인 골프의 본질처럼 들린다면 제대로 짚었다. 그것도 고난도의 전략적인 골프라고 보면 된다. 호이레이크에서 잘 구사한 샷과 가혹한 결과를 가르는 차이는 디오픈챔피언십에서만큼은 아무 문제가 없다. 이곳의 홀은 인내심을 가지고 숨죽인 채 매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타격을 가한다.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영국의 코스 설계가 존 로는 이 코스의 “파괴할 수 없는 불멸성”을 찬양했고, 팻 워드-토머스라는 골프 저널리스트는 호이레이크에서의 플레이를 “두려움의 훈련”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우표 버전 2.0. 길이가 136야드에 불과한 17번홀은 미세한 타깃이다.

호이레이크의 아름다움은 이 연산을 완벽하게 계산해낼 수 있다는 데 있다. 벙커와 잔디, 바운스 그리고 바람이라는 정수들이 대수의 정리를 구성하지만, 타이거 우즈가 2006년에 보여줬던 것처럼 오직 실력의 정점에 오른 선수만이 그 연산을 풀어낼 능력을 갖췄다. 타이거 우즈는 그해에 아이언과 노련한 퍼팅으로 이 링크스를 제압했다(우즈가 그 대회에서 드라이버를 단 한 번만 사용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고의 실력자를 가려낸다는 점에서 호이레이크는 뮤어필드나 세인트앤드루스와 동급이다.

지난 100년 사이에 이곳에서 열린 여덟 번의 디오픈챔피언십에서 로열리버풀은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당대 최고의 선수를 골라내 챔피언 자격을 수여했다. 월터 헤이건이 1924년 여름에 골프계를 장악한 최고의 선수였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US오픈에서 공동 4위를 한 데 이어 호이레이크에서 링크스를 정복하고, 두 달 후에는 총 다섯 차례 석권한 PGA챔피언십 중에 세 번째 우승을 기록했다.

디오픈챔피언십이 다시 호이레이크를 찾아온 1930년에도 이 코스는 역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선수를 찾아냈다. 보비 존스는 브리티시아마추어 우승에 이어 디오픈에서 두 타 차 승리를 거뒀고, 몇 달 후에는 US오픈과 US아마추어까지 석권했다. 1936년에는 앨프 패덤이 우승했고 1947년에는 프레드 댈리가 우승을 차지했는데, 둘 다 탁월한 선수이긴 했지만 이때는 최고의 미국 프로들이 디오픈에 그렇게 많이 참가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1956년 피터 톰슨.
1956년 피터 톰슨.
2006년 타이거 우즈.
2006년 타이거 우즈.
2014년 로리 매킬로이.
2014년 로리 매킬로이.

1956년에는 US오픈에서 공동 4위에 오른 호주의 피터 톰슨이 로열리버풀에서 3년 연속으로 디오픈 챔피언에 오르며 총 다섯 번의 클라레 저그 가운데 하나를 품에 안았다(그의 스코어는 2오버파 286타였다). 로베르토 데 빈센초는 1967년에 디오픈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모두 7승을 거뒀다. 이듬해 봄에는 마스터스에서 밥 골비에 이어 2위를 차지했는데, 부정확한 스코어카드에 서명을 하는 바람에 플레이오프 진출 기회를 놓쳤다. 우즈는 2006년 15개 대회에 출전해 8승을 거뒀으며, 그중에는 PGA챔피언십도 포함돼 있다. 2014년 챔피언인 로리 매킬로이는 그해에 4승을 거뒀는데, 그건 지금까지도 그의 한 시즌 최다승이다. 그는 호이레이크에서 우승하고 그다음 달에 PGA챔피언십 타이틀까지 차지했다.  

선수들이 디오픈에서 맞이하게 될 코스의 순서는 회원들이 플레이할 때와 조금 다르다. 평소의 17번홀과 18번홀이 디오픈에서는 1번홀과 2번홀로 배치된다. 평소에 1번홀과 16번홀로 사용되는 홀은 모두 드라이버 샷 연습장을 끼고 오른쪽으로 굽은(내부에 OB가 있는) 형태인데, 배치의 변동으로 인해 이 두 홀이 대회에서는 3번홀과 18번홀이 된다. 코스 설계가인 마틴 이버트와 톰 매켄지가 새로운 벙커와 챔피언십 티를 추가하고, 13번홀과 14번홀의 모래언덕 사이에 황무지를 더했으며, 몇몇 홀의 페어웨이와 그린의 위치를 변경하는 등 2023년 디오픈에 맞춰 코스를 손봤다.

울퉁불퉁한 맨땅. 호이레이크의 까다로운 지형은 극도의 전략적 사고를 요구한다.
울퉁불퉁한 맨땅. 호이레이크의 까다로운 지형은 극도의 전략적 사고를 요구한다.

호이레이크는 10번홀을 파5에서 507야드의 파4로 조정해 7383야드의 파71으로 플레이할 예정이다. 2014년 대회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기존의 15번홀이었던 파3 홀 대신 17번홀 자리에 새로운 파3 홀을 조성한 것이다. 이버트와 매켄지는 그 홀의 방향을 바꿨다. 위치는 그대로이지만 이 독특한 136야드의 홀은 이제 서쪽을 바라보며 디강 하구를 배경으로 도드라져 보이는 작은 그린을 향해 나아가는 형태가 됐다.

이 독특한 파3 홀의 등장으로 막바지 홀들의 순서에 변동이 생겼고 18번홀 티까지 다시 돌아가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지만, 호이레이크에 부족했던 반짝이는 매력이 더해졌다. 이런 변화가 과연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당대 최고의 선수에게서 최고의 플레이를 이끌어내온 로열리버풀의 능력을 방해할 것 같지는 않다. 우승 후보가 궁금한가? 올해 메이저챔피언십의 우승자와 준우승자부터 살펴보는 게 좋을 것이다. 호이레이크라는 방정식을 풀기 위해 필요한 것을 그들은 가지고 있을 테니까. 

서쪽 하늘 끝. 광활한 디강 하구에서는 늘 강한 바람이 몰아친다.
서쪽 하늘 끝. 광활한 디강 하구에서는 늘 강한 바람이 몰아친다.

 

사진_카를로스 아모에도(Carlos Amoedo) / 게티이미지(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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