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강 칼럼_설계생활자]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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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강 칼럼_설계생활자]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 서민교 기자
  • 승인 2022.11.0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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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골프리조트(현 블루원상주) 동 코스 6번홀 풍경. 멀리 목가적인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한국적 자연풍경식 골프장 경관의 이상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짧은 파4 홀이지만 지형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목장의 나무울타리 느낌을 연출해 전략성과 경관성이 뛰어난 홀이다. 
▲오렌지골프리조트(현 블루원상주) 동 코스 6번홀 풍경. 멀리 목가적인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한국적 자연풍경식 골프장 경관의 이상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짧은 파4 홀이지만 지형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목장의 나무울타리 느낌을 연출해 전략성과 경관성이 뛰어난 홀이다. 

골프 코스는 한 폭의 풍경화와 같고 아름답게 관리된 정원과 같다. 자연환경이 주는 경관에 순응하는 것이 이상적인 골프장 경관이 아닐까.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 년 살고 싶어.’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불세출의 트로트 가수 남진이 1972년 발표한 ‘님과 함께’ 첫 소절이다. 대중음악에는 한 시대의 시대정신이 담겨 있다. 특정 시기 인기가 높았던 대중가요를 통해 당시 사회상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가늠해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 얼마 지나지 않은 1960년대까지는 타향살이, 고향, 전쟁, 가족 등이 당대 대중가요의 주요 주제였다. 1970년대 한국 사회는 국가 재건이라는 목표 아래 초가집을 부수고 새마을운동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고향을 떠나 도시로 돈 벌러 가는 이촌향도의 시대였다. 남진의 ‘님과 함께’ 또한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 노래다. 

◇ 시대별 이상적 경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골프장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후반 이후부터다. 남진의 ‘님과 함께’가 한창 인기 있던 시대와 비슷한 시기다. ‘님과 함께’에는 언젠가 돈을 벌어 귀향한 후 달력 그림과 같은 언덕 위에 번듯한 집을 짓고 잘 살고 싶다는 그 시대의 욕망이 반영되어 있다. 나만의 이상향을 만들고 싶은 희망과 대리만족을 주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우리나라 골프장을 만들 때도 이와 비슷한 시대상이 반영되지 않았을까. 번듯한 나만의 이상적인 골프장, 남에게 자랑하고 싶은 나만의 놀이터를 만들고 싶지 않았을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리는, 가지고 싶어 하는 욕망의 대상으로서 이상적인 경관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나라에 총천연색 컬러 TV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이다. 그 이전에 신문, 잡지, TV는 대부분 흑백이었다. 당연히 그 시대 사람들이 상상하고 희망하는 이상적인 경관 또한 상상 속에서는 총천연색이었겠지만 실제 미디어에서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 흑백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총천연색으로 표현된 이상적인 풍경을 접할 수 있었던 것 중의 하나는 이발관 그림이었다. 당시 한국의 일반 남성들이 대부분 이용했던 이발관에서 ‘님과 함께’를 들으면서 이발관 풍경화를 보다 보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동경하게 되지 않았을까. 

◇ 풍경화 속 경관

풍경화는 자연의 이상적 상태를 일반적 틀에 따라 그림으로 표현하는 양식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의 산수화는 자연을 표현하는 동시에 자연관을 반영하는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농경을 주로 했던 동양인들에게 자연은 매우 소중하고 절대적이었다. 자연과 인간의 이러한 밀접한 관계 때문에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산수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때 산수화는 실제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신선 사상이 반영되어 도안적이며 상징적인 형태로 표현되었다.

이에 비해 서구의 풍경화는 16~17세기 새로운 그림 사조로 나타났다. 이전에는 교회나 성당의 벽이나 천장에 인물과 정물의 배경으로만 그려지던 풍경이 그림의 주역으로 등장한 것이다. 초기에는 실제 경관보다는 그리스와 로마의 이상 경관에 가까운 풍경을 묘사했다. 식자와 부자 계층이 생겨나면서 이러한 풍경 그림을 보유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며, 심지어 경관을 찾아 여행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이들은 풍경화 속 이상적 경관을 찾아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곳곳을 여행했고, 이러한 풍경과 비슷한 경관을 만들어보겠다는 발상을 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경관을 픽처레스크 경관(Picturesque Landscape)이라 한다. 이러한 경관관을 실제 공간에 만든 대표적인 것이 영국의 ‘풍경식 정원’ 양식이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도시의 부유 계층은 ‘풍경식 정원’을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고, 이들은 대부분 영국의 목가적 농촌 경관을 구현하고자 했다.

◇ 골프장은 이상적 열락정원

풍경화 속 경치가 실제로 만들어지는 현대의 일반적인 방식은 열락정원(Pleasure Garden)이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열락정원은 경제가 안정되고 잉여재산이 비축되어 경제적, 사회적 구조가 안정적일 때 출현한다. 이것은 골프장이 도입, 발전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또 자연 속에 주어진 자연을 이용해 골프 코스를 만들고 그 속에서 즐거움과 쾌감을 느끼는 골프라는 게임은 열락정원의 본성과 닮아 있다. 그러므로 골프장은 현대적 열락정원의 하나라고 할 수 있으며. 규모 면에서는 일반적인 개인 정원을 넘어서는 거대한 규모이자 때론 공공 공간의 성격을 가지기도 한다.

열락정원의 원형은 에덴동산, 파라다이스 등 종교적·신화적 차원에서 주장 상상하는 이미지에서 출발(황기원 1987)한다. 현세에서는 이러한 이미지가 지상낙원으로 표현된다. 열락정원은 초기에는 왕, 귀족, 부자 등 유한계급의 전유물이었다가 근대에 와서야 보편화되었다. 골프장이 대중화되는 흐름과 유사하다. 고대인들은 인공적인 언덕을 만들거나 큰 돌을 세우고 놓아 환경에 대한 인간의 순치 의지를 나타냈고, 불리한 외부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울타리를 두름으로써 정원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어원상 정원(Garden)을 구성하는 히브리어의 ‘gan’은 방어의 목적으로 울타리나 둘러쌈을 의미하며 ‘oden’ 혹은 ‘eden’은 즐거움이나 쾌락을 의미한다. 정원이란 살기에 좋고 즐거운 곳이 되게끔 울타리를 치는 것이다. 그리하여 창세기에 묘사된 에덴동산과 같은 파라다이스의 추구는 불리한 자연환경에서 더 아름다운 정원을 탄생시켰다.

골프장 또한 원래의 자연환경을 변경하고 활용해 인공의 골프장 경관으로 만들고 그 속에서 즐거움과 쾌락을 느낄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인공경관은 더 아름답게 관리된 자연경관으로 탈바꿈한다는 측면에서 또 하나의 에덴동산 혹은 파라다이스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골프장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상적 자연경관을 추구하고 열락정원을 만들려 하며 코스 설계가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선봉대 역할을 한다.

◇ 일본 정원의 원류는 한국

다른 나라도 비슷하지만, 골프장을 처음 도입하고 만드는 것은 대부분 권력자나 부유층 등 특정 계층이다. 즉 이들의 경관관, 그 시대에 선망했던 경관이 골프장에 투영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초창기 골프장, 골프 문화의 대부분은 일본의 영향을 받았고, 골프장 경관 또한 일본 골프장 경관과 정원 양식이 많이 반영되었다. 일본 전통 정원은 시대적 특성에 따라 회유임천식, 고산수식, 다정식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이 중 우리나라 골프장 경관에 영향을 미친 일본 정원은 회유임천식(回遊林泉式)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정원 중심에 연못과 섬을 만들고 다리를 만들어 주변을 회유하며 감상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어딘가에서 많이 본 듯한 정원 아닌가. 바로 경주 안압지 정원 양식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회유임천식 풍경을 자연스럽게 연출하지만, 일본은 여기에 축경식 정원 기법을 더해 나무를 강하게 전정하고 풍경을 상징적으로 축소 연출하는 등 기교를 많이 부렸다.

삼국시대 백제, 신라 문화가 일본에 전파되었듯이 일본 전통 정원 또한 백제, 신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것은 <일본서기>에 백제의 노자공이 일본 정원의 효시라 불리는 수미산과 오교를 만들었다는 일본 정원 관련 최초의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초기 골프장 조경이 일본 정원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그 일본 정원의 대표적 양식은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영향을 받은 정원이다. 

◇ 골프장이 그리는 경관

골프장 경관을 구성하는 요소는 주변 자연환경, 코스 스타일, 조경식재 경관이다. 골프장이 위치한 자연 지형에 따라 코스 스타일은 산지형, 구릉지형, 평지형, 해안형 등으로 나뉘며 코스 스타일이 정해지고 나면 코스를 구성하는 요소, 제원, 면적 등은 대부분 골프장이 비슷하다. 결국 골프장 경관 특성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는 골프장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이다.

산지형 골프장에 해안 링크스 코스 조경을 하는 것은 맥락이 맞지 않는다. 반대로 평지형 코스에 산지와 비슷한 식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무리가 따르고 비용이 많이 들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 효과 또한 기대하기가 힘들다. 주어진 환경이 이미 골프장 경관을 결정한다고 봐야 한다. 골프장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에 따라 조경식재 경관을 구성하는 수목의 종류, 크기, 규모 등도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것이다. 무리하게 인위적인 경관을 연출하기보다는 주변 환경 맥락에 가장 자연스럽게 순응하는 경관이 가장 이상적인 골프장 경관이다.

골프장이 한 개인의 공간이 아닌 것처럼, 골프장 경관 또한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골프장 개발 과정에서도 경관영향평가, 경관 계획 등의 큰 틀을 준수해야 한다. 골프는 점점 대중화되고 있으며 대중 골프장이 우리나라 골프장의 반을 넘어선 지 오래다. 골프장은 다양한 계층이 이용하는 놀이공간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도 혼자 살면 외롭다. 즐겁게 ‘님과 함께’ 살아야 한다. 

* 코스 설계가 이현강은 오렌지엔지니어링에서 설계를 총괄하며 골프다이제스트 코스 자문 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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